최근 금융권 노동자와 비금융권 노동자를 갈라치는 '귀족' 프레임이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KB국민은행, 중소기업은행 등 1금융권을 비롯해 금융권 전반에 임금 인상 등 노동자 목소리가 커지자 사 측으로부터 광고비를 받는 언론이 대놓고 편향된 보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귀족노조 담론은 노조 협상력을 약화시킵니다. 파업 이유를 따지기 전 "연봉 1억원이 넘는 노동자가 국내외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임금을 더 올리려고 하는 것이 맞냐"는 논리가 급속도로 퍼지면 노조는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쥐들을 흰쥐와 검은 쥐로 나누고 사회적 계층을 다르게 부여한 뒤 분열을 조장해 고양이가 통치를 이어가는 꼴과 같습니다.
이승윤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등은 지난달 <한국 사회정책>에 '누가 왜 귀족노조를 말하는가? 담론의 제도적 진화에 대한 비판적 분석'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 따르면 '귀족 노조' 프레임은 주로 임금단체협상이 몰린 시기에 급증합니다. 노조 간부 개인에 대한 문제 지적을 넘어 노조 전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뤄집니다. 결국 노동자는 정치적으로 고립됩니다.
단순히 연봉 액수를 따져 파업 정당성을 단죄하는 것이 옳을까요. 반대로 하루를 버티기 바쁜 저소득·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파업을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요. 노동자는 누구나 헌법에 의해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받습니다. 고소득 노동자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그들의 과한 요구는 지적받아 마땅하지만, 파업 자체를 이기적으로 몰아간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노동자도 목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파업으로 일반 국민 대다수가 피해를 본다는 담론도 갈라치기 프레임입니다. 파업을 하게 된 배경인 경영진 문제는 지운 채 노동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기 때문입니다. 노동자가 단결권을 갖는 순간 일과 소비자를 내팽개친 비윤리적 인간으로 몰립니다. 이 논리가 확산되면 노동자는 어떤 폭정과 억압에도 대항하지 못하고 참아야만 합니다.
세계인권선언은 '인간이 폭정과 억압에 대항하는 마지막 수단으로서 반란을 일으키도록 강요받지 않으려면 노동자에게 단결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명시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금융권 노조뿐만 아니라 전국민주노동조합 총연맹, 전국금속노동조합,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등 수많은 노동자들을 '귀족'으로 치부하고 입을 막았습니다. 심지어 대통령이 나서서 "연봉 7000만 원을 받는다는 근로자들이 불법파업을 벌이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고 연설하기도 했습니다.
진짜 귀족은 노조가 필요할까요. 우리 언론은 진짜 귀족이라 할 수 있는 재벌가들의 경영 세습에 얼마나 비판해 왔나요. 노동자를 깔아뭉개고 받는 광고비에 눈멀어 사 측과 어깨동무하진 않았나요. 누군가에겐 생존이 걸린 문제에 쉽게 손가락질하진 않았나요. 노동권은 서로의 노동을 존중할 때 신장될 것입니다. 언론인으로서 저부터 균형을 갖도록 주의하겠습니다. 노동자 말을 진실이라고 추앙하지도, 경영진 말만 받아쓰지도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7일 네이버에서 일간지 한정 '귀족노조'를 검색한 결과. (사진=뉴스토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