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지난해 4월 24일 금융감독원은 이례적으로 '농협금융지주 및 농협은행 정기검사 착수 배경'이라는 제목의 자료를 냈습니다.
금감원은 당시 "농협금융과 농협은행 정기검사에서 지주회사법, 은행법 등 관련 법규에서 정하는 대주주(농협중앙회)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 금지, 지배구조 관련 사항에 대해서도 살펴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그간 역대 금감원장들이 손대지 못한 농협 조직의 지배구조를 손질하겠다고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농협중앙회에서 농협금융, 그리고 농협은행 등 금융계열사로 이어지는 특수한 지배구조와 그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지적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농협금융은 지난 2012년 '신경분리(신용·경제사업 분리)' 이후 중앙회에서 분리돼 독립적인 금융지주사로 출범했으며, 이를 통해 산하 금융계열사에 대한 독립적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는데요. 하지만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 지분 100%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어, 중앙회가 금융지주 및 금융계열사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사진=뉴시스)
실제로 농협중앙회장이 바뀔 때마다 농협금융 계열사 경영진이 대거 교체되는 사태가 수 차례 반복됐습니다. 지난해 1월엔 강호동 중앙회장이 새로 취임한 이후 NH투자증권 사장 인선을 두고 금융지주와 중앙회가 인사권을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복현 금감원장도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이 구분돼 있다고는 하지만 농협 특성상 그것이 명확한지는 좀 더 고민할 지점이 있다"며 "합리적인 지배구조와 상식적 수준의 조직문화가 있으면 좋겠다는 게 당국 공통의 생각"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연말 이 원장의 '매운 맛' 발언은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켰습니다.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 주택건설회관에서 열린 건설업계 및 부동산시장 전문가 간담회에 참석한 후 취재진을 만나 "남은 임기 6개월 동안 검사·감독 방향은 무관용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포문을 열었습니다.
농협금융지주와 농협은행,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 등의 검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는데요. 발표 시점을 미룬 이유에 대해 이 원장은 "남은 임기 6개월 동안 검사·감독 방향은 무관용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며 "'매운 맛'으로 시장과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자리에서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을 향한 이 원장의 발언 수위는 묘하게 '톤 다운' 돼 있었습니다. 이 원장은 "농협은 금융의 전문성, 건전성, 운영리스크 관리와 관련한 경험을 포함해 농업과 농민에 대한 애정과 이해도, 등 양쪽에 균형 있는 분을 선임하는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뉴시스)
우리금융지주 등 다른 금융지주사를 향한 금감원의 서슬퍼런 칼날이 농협금융만 피해가는 듯 합니다. 그런 사이 농협금융은 지주 회장을 비롯해 은행·생명·카드·손해보험·캐피탈·저축은행 등 9개 계열사 중 6곳의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했습니다.
지주 포함 10곳의 CEO 중 6명이 강호동 회장과 동향인 영남 지역 출신들로 채워졌습니다. 우연의 일치일까요. 강태영 농협은행(경남 진주), 송춘수 농협손보(경남 합천), 박병희 농협생명(경북 청도), 김현진 벤처투자(경북 의성), 임정수 농협리츠(경북 안동) 대표 등이 영남 지역 출신이 아닌 인사를 찾기가 더 어려울 지경입니다.
그간 농협금융지주 지배구조에 대한 서슬퍼런 경고를 내놓은 금감원 입장은 무엇일까요.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당국에서 금융사 인사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없고, 절차상 투명성을 당부하고 있다"고만 밝혔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농협의 인사 절차에 대해서 투명성을 강조해온 기조가 변한 것은 없다. 절차가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이루어졌느냐에 대해서 지켜보고 있는데 농협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만 밝혔습니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