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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 있는 퇴진
입력 : 2024-12-20 오전 9:40:05
'좋은 이별'이라는 모순적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과연 가능할까 싶었습니다. 몇 번의 크고 작은 이별 끝에 내린 결론은 '좋은 이별이란 없다'입니다. 이별은 그냥 헤어짐, 상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상대에 대한 배신입니다. 영원히 보지 않겠다는 냉정한 다짐이니까요. 
 
이별이라는 슬픈 단어 앞에 '좋은'이라는 수식어를 갖다 붙이는 건 죄책감 때문인 것 같습니다. 특히 상대는 관계에 미련이 남아 있지만 나는 떠나고 싶을 때, 손절하고 싶은 쪽이 미안해하며 꺼내는 말이 '좋은 이별'입니다. 
 
좋은 이별을 떠올린 건 최근 정치권에서 회자된 '질서 있는 퇴진'이란 표현 때문입니다. '질서 있는 퇴진'이 정치권의 캐치프레이즈로 전면에 등장한 것은 아마도 지난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인 것 같은데요. 당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처음으로 입에 올린 표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겠다는데도 야당이 질서 있는 퇴진에는 관심이 없고 기어이 탄핵으로만 가려 한다며 나온 말이었는데요. 국정 대혼란과 무질서 끝에 결국 박 대통령은 탄핵됐습니다. 
 
퇴진. 스스로 물러난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인격을 지닌 리더라 할지라도 인간이 한번 권력의 맛을 보면 스스로 물러날 때를 정해 자리에서 내려오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권력은 아버지와 아들도 나누지 못하니까요. 
 
공교롭게도 정진석 전 원내대표가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은 이번 정권에서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습니다. 가결 전까지 여당이 내세운 구호 역시 '질서 있는 퇴진'이었는데요. 퇴진 로드맵을 두고 격한 혼란 끝에 헌정 사상 세 번째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야 말았습니다. 질서 있는 퇴진을 내세웠던 한동훈 대표가 퇴진을 당하며 여당은 극심한 내부분열을 겪고 있는데요. '좋다'와 '이별'이 공존할 수 없듯 '퇴진'에도 '질서'가 있을 수는 없나 봅니다. 
 
(사진=연합뉴스)
 
윤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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