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김유정·김태은 인턴 기자] "총 투표수 300표 중 가 204표…"
윤석열 탄핵안 투표 결과를 발표하는 우원식 국회의장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습니다. 일제히 "와!"하고 내지르는 함성에 중계방송 소리가 묻혀버린 탓이었죠.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맘을 졸이던 사람들은 "이겼다"며 자축의 박수를 치고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의결 정족수인 200표를 살짝 웃돈 결과에 "아슬아슬했다"고 땀을 훔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탄핵안 표결이 좌절됐던 지난 7일, 더 앞서서는 비상계엄이 선포됐던 지난 3일 이후 대기 상태를 유지했던 이들은 "국민이 승리했다"며 기쁨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시각 본회의장 안은 차분함 속에서 환희의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본회의가 개시된 14일 오후 4시5분부터 탄핵안 개표 결과가 발표되는 오후 5시까지 단 한 번도 큰 소리가 나지 않았던 본회의장에서 처음 나온 환호였습니다.
표결 이틀 전부터 일반인 통제…적막 속 긴장 '팽팽'
윤석열 탄핵안 통과는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들 속에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순간들의 연속이었습니다. 탄핵안이 재발의되고 표결에 이르는 마지막 48시간은 특히 숨 가쁘게 돌아갔습니다.
두 번째 탄핵안은 당초 계획보다 하루 늦은 12일 재발의됐습니다. 비상계엄 이후 급박하게 작성됐던 1차 탄핵안과 달리 위법한 계엄과 내란 행위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신중에 신중을 더했습니다. 탄핵안 발의를 앞두고 '야당이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다'고 주장한 윤석열 씨의 4차 대국민 담화는 탄핵 의지를 더 불태웠죠.
탄핵안 표결이 가까워질수록 국회 경내는 적막함이 감돌았습니다. 정문 밖에서 외치는 탄핵 촉구 집회의 구호만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질 뿐이었습니다. 출입증을 소지하지 않은 외부인의 출입이 일제히 통제되면서 긴장감은 한층 더 고조됐습니다.
표결 하루 전인 지난 13일의 경비태세는 훨씬 더 삼엄해졌습니다. 의원회관에서 예정된 토론회는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면서 대부분이 취소됐습니다. '일시취재증'을 소지한 기자 역시도 기자실이 있는 소통관과 본청을 제외하고는 방문증이 발급되지 않는다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본청 역시도 주요 정당 공보국 등에 출입등록 여부를 일일이 확인한 후에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상임위원회 회의 참석차 국회를 찾은 공무원들 역시 사전 출입 신청자 명단에 없다는 이유로 출입증 발급이 거절돼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습니다. 본청 출입 게이트에서는 국정감사 시즌에도 하지 않았던 개별 몸수색까지 하느라 긴 줄이 늘어서기도 했습니다.
국회 앞 잔디광장에 등장한 방송사들의 특설 스튜디오. (사진=뉴스토마토)
국회 잔디광장에는 총선 때나 볼 수 있는 방송사들의 특설 스튜디오가 설치됐습니다. 이번 표결에서는 '중대한' 결정이 꼭 나올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탄핵안 표결이 가까워 올수록 국민의힘 내부 분위기도 동요하는 것 같았습니다. 첫 탄핵안 투표에 참여했던 김상욱 의원을 시작으로 김재섭, 진종오 의원이 연이어 공개적으로 탄핵 찬성의 뜻을 밝혔습니다. 김상욱 의원은 지난 13일부터 본청 입구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출근길 발걸음을 멈추고 그에게 붉은색 머플러를 둘러주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숨죽인 로텐더홀…짧은 환호 뒤 무거운 책임감
결전의 날인 14일이 됐습니다. 이날 본회의장과 로텐더홀은 유독 엄숙하고 침착한 분위기였습니다. 첫 표결이 있었던 지난 7일에는 일찍부터 민주당 보좌진들을 중심으로 로텐더홀에 진을 치고 탄핵 촉구를 외쳤지만, 이날에는 본회의 시작 직전까지도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습니다.
로텐더홀 계단에 대열을 맞춰 앉은 민주당 보좌진들은 본회의 전 의원총회 참석을 위해 본청으로 들어오는 자당 의원들의 이름을 연호하며 응원을 보낼 뿐 탄핵과 관련한 어떠한 구호도 외치지 않았습니다. 본회의 시간이 가까워 오면서 로텐더홀의 인파는 계속 늘어났지만, 웅성거림은 크지 않았습니다.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는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다는 듯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이어갔습니다. 이들은 점심 식사도 본청 내 구내식당에서 단체로 해결하며 최후의 결전을 기다렸습니다.
역사적 순간을 맞이할 기자들 사이에도 긴장이 고조됐습니다. 4층 방청석 출입문 앞은 회의 시작 한 시간여 전부터 입장을 위한 긴 줄이 늘어섰습니다. 잠시 자리를 비운 기자들은 옷과 노트북, 카메라 등으로 '영역 표시'를 하기도 했습니다.
14일 오후 4시 본회의 참석을 위해 국민의힘 의원들이 방호요원이 만들어 준 통로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로텐더홀이 일순간 침묵에 휩싸였습니다.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던 이들도 모두 말을 멈췄습니다. 마라톤 의원총회를 마친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장으로 입장을 시작한 것입니다. 국회 방호과 직원들은 이들이 원활히 이동할 수 있게 국민의힘 의총이 진행됐던 예결위 회의장에서 본회의장까지 스크럼을 짜 통로를 마련했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무거운 표정으로 본회의장에 입장했습니다.
이날 만큼은 여야 의원들도 서로를 향한 비난도, 고성도 일체 하지 않았습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가 탄핵소추안 제안 설명을 위해 단상에 올랐을 때도 국민의힘 의원들은 말없이 듣기만 했습니다.
오후 4시29분. 마침내 표결이 시작됐습니다. 투표에 참여하는 의원들도, 유튜브를 통해 현장을 지켜보는 로텐더홀의 보좌진들도 숨을 죽였습니다. 김상욱 의원을 비롯한 몇몇은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투표를 마친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은 바로 본회의장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지난 표결 때와 달리 이들에게 쏟아지는 야유는 없었습니다.
오후 4시45분, 명패함을 열고 개표가 시작됐습니다. 본회의장에 남은 의원들의 간절함은 극에 달했습니다. 국민의힘 의원 중 공개 찬성을 발표한 의원은 총 7명뿐이었기에 부결 가능성에 대한 긴장을 늦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턱을 괴고 개표 상황을 내내 지켜보는 의원, 고개를 숙이고 두 눈을 감은 의원, 뉴스를 틀어 상황을 지켜보는 의원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개표 상황을 유심히 지켜봤습니다.
5시가 가까워진 시간, 개표 결과 용지가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전달됐습니다. 국회의원 300명 전원이 투표에 참여했다는 결과는 이미 발표됐습니다. 우 의장의 입에서 '200'이란 말이 나오길 모두가 간절히 염원했습니다.
얼마 후 탄핵안 최종 가결이 선언됐습니다. 짧은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며 어깨를 토닥이는 의원도, 손을 잡는 의원도 보였습니다. 울컥해 눈물을 흘리는 취재진도 있었습니다.
탄핵을 바랐던 모두가 짧은 환호 끝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민주주의가 승리했다'고는 하지만 현직 대통령의 탄핵 자체가 대한민국의 비극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김진양 기자, 김유정·김태은 인턴기자 xxt19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