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때 불현듯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던 훈련소에서의 순간이 스쳐 지나갔다. '전방에 5초간 함성 발사'라는 구호 아래, 모든 힘을 다해 목청을 터뜨리던 시간들. 반은 강제였지만, 나머지 반은 수많은 참기 힘든 상황에 대한 분노와 짜증을 몰래 섞어 분출시키기 위한 자발적 외침이기도 했다. 그 이후로 과연 이렇게 소리를 질러본 때가 또 있었던가. 총을 든 군인들이 민의의 전당을 습격했던 믿을 수 없던 밤이 지나고,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며 모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들의 함성은, 국회의사당 건물을 뒤흔들고 있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지만, 국민이 되는 요건은 하위 법률로 정한다고 할 때, 우리는 해소하기 힘든 논리적 모순을 마주하게 된다. 이는 뒤에서 정의할 개념을 앞에서 먼저 사용하는 기초적인 논리적 오류같이 보이는데, 그렇다고 국적법이 헌법보다 근본적이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퍼즐은 앞에 나오는 '국민'과 뒤에 나오는 '국민'이 실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풀리기 시작한다. 앞의 국민은 언어나 법적 정의를 초월해 존재하는, 문자로 완전히 포섭할 수 없는 일종의 본체라 할 수 있다. 마치 더 이상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전제를 수학에서 더 따지지 않고 공리로서 받아들이듯, 헌법 이전에 존재하며 모든 것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근원적인 무언가를 헌법은 가정하고 있다. 이것은 불립문자의 영역에 놓여 있다.
헌법 제정 과정에서 유진오가 준비했던 헌법 초안은, 해당 조문을 "국가의 주권은 인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인민으로부터 발한다" 그리고 "조선국민의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라고 하여, '인민'과 '국민'을 맥락에 따라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후 헌법 제정 과정에서 인민이라는 단어는 북한에서 사용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 의견이 제기되었고, 결국 인민 대신 국민을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유진오는 "국민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의 인민을 의미하므로 국가우월의 냄새를 풍기어, 국가라 할지라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로서의 사람을 표현하기에는 반드시 적절하지 못하다"라고 회고하며 그 결정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 바 있다.
아마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래전, 억울하게 두들겨 맞으며 토해내듯 터져 나온 이름 없는 누군가의 '악!' 소리로부터 이 본체는 서서히 자라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억압과 부당함에 맞선 그 근원적 울림은 중세 영국에서 왕의 권력을 제한하기 위한 헌법적 발상들로 이어지고, 통치자의 자의적인 힘의 행사를 막고 합의된 제도와 규범을 따르도록 하는 법치주의를 낳았다. 이것이 바로 국회의 활동을 금지하는 계엄 포고령과 같은 자의적인 '명령에 의한 통치'를 정면으로 막아서고 있는 원리이다. 그러니, 그 '악!'소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시간과 역사를 가로질러 지금까지 이어지며 오늘의 외침과 공명하고 있다. 이것은 몇 가지 정치적, 법률적 잔기술로 대적할 수 없는 근원적 힘이다.
지난 토요일, 국회 앞은 성스러운 곳이었다. 거기에는 헌법의 활자보다 앞서 존재하는 외침이 있었다. 이 외침은 결코 한 순간의 울림으로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마침내는 국회의사당 안에 자리한 이들에게 닿아 그들의 양심을 흔들고 떨림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 이 함성 위에 공격받고 부서진 우리의 정치공동체를 다시 세워야 한다. 결국은 사람들의 함성이 헌법이다.
이철희 고등과학원 수학난제연구센터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