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안간 발생한 비상계엄 사태에 온 국민이 놀랐습니다. 교과서에서나 봤던 계엄을 실제로 겪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직 근현대사를 배우지도 않은 꼬마들은 SNS에서 어른들보다 빨리 계엄 소식을 접하고 부모에게 뛰어와서 계엄이 무엇이냐고 묻기도 했다고 합니다. 설명을 들은 꼬마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싶네요.
지난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역 인근에서 시민들이 '탄핵'이라 적힌 보이그룹 NCT 응원봉을 들고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 참석해 있다. (사진=연합뉴스)
저는 늘 취재해왔던 중견·중소기업에 비상계엄 사태, 탄핵 정국이 어떤 영향을 미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이 가장 큰 위험요인이기 때문에 얼른 정리가 되는 것을 바랐는데요. 만약에 탄핵이 이뤄진다면 그것 또한 혼란 아니겠느냐고 물었더니 인상 깊은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때도 큰 혼란은 없었어요. 불확실성의 해소는 호재죠. 대한민국은 그걸 경험해봤죠. 그래서 차분하게 정상화될 것이라는 믿음들이 있는 거죠. 처음이면 허둥지둥 할 텐데 탄핵이 되면 다음 대선 일정도 잡히고 착착 진행이 될 겁니다. 탄핵 경험이 있어서죠. 경력직이잖아요."
맞는 말인데 맞아서 기분이 묘했습니다. 우리에게 탄핵은 결코 낯설지 않은 단어고, 탄핵이 어떻게 이뤄지고 그 다음 과정은 어떻게 진행될지 그려집니다. 그렇기에 대혼란도 적겠죠. 계엄처럼 옛날 옛적에 경험한 것이 아니라 비교적 최근에 경험한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아무도 탄핵 누적 경험을 원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본의 아니게 경력직이 되어있네요.
대규모 집회가 열리던 지난 7일, 저는 팀원들과 미리 예정된 촬영을 진행하고 있었는데요. 이날도 화두는 탄핵소추안 가결 여부였습니다. 10여 명의 90년대생들이 모여 지나간 일을 반추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는데요. 여러 사람이 탄핵 얘기를 하면서 소리가 섞여 알아듣기 어려워지자 누군가 질문했습니다. "이번 거? 저번 거?"라고 물었습니다. 이번 탄핵, 저번 탄핵을 지칭한 것이지요. 탄핵에 순서를 매기는 기막힌 모습이 연출되면서 다른 누군가 다음 거는 누구냐고 묻다가 다 같이 숙연해졌네요.
좋은 경험만 하기에도 짧은 인생인데 얼마나 더 아프고 그로인해 얼마나 더 배워야 하는 걸까요? 우리의 배움은 아직도 모자란 걸까요? 이제는 좋은 경력이 필요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