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는 어느덧 일반 사람들에게 익숙한 단어가 됐습니다. 해당 죄목으로 고소 및 고발을 해봤거나 당해본 사람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는 일상화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형법 제307조 제1항)나 모욕죄(형법 제311조)는 사람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인 이른바 개인의 외적 명예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입니다. 다만 개인의 명예가 중요하나, 민주주의의 근간인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다는 측면에서 두 죄의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지난 16일 2020 도쿄올림픽 양궁 3관왕인 안산 선수가 SNS에 일본풍 주점 간판 사진과 함께 “한국에 매국노가 왜 이렇게 많냐”는 글을 올렸습니다. 이에 반발한 자영업자 단체는 19일 오전 안 선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같은 날 오후 안선수는 SNS에 장문의 입장문을 내고 사과의 뜻을 밝혔습니다.
명예훼손죄냐, 모욕죄냐
안 선수의 행위가 명예훼손죄나 모욕죄가 성립할지 법조계의 평가는 엇갈립니다. △집합 명칭에 의한 명예훼손은 특정성이 인정되기 힘들어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평가 △해당 업소를 알 수 있으므로 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는 평가 △사실의 적시가 아니므로 모욕죄가 성립한다는 평가 △표현의 자유 범위에 해당하는 정도로 모욕죄도 성립되기 힘들다는 등 다양한 평가가 나옵니다.
하지만 헌법 제21조 제1항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사회구성원 간에 다양하고 자유로운 의견 교환을 보장하는 기초입니다.
이에 따라 민주적 의사 형성이 가능하므로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데요. 두 죄는 국가의 형벌권을 빌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측면이 있기에 안 선수의 행위가 어떤 죄로 처벌받게 될 것인지 보다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나 모욕죄에 규정된 행위가 꼭 형사처벌이 필요한 행위인지 논의가 필요합니다.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사진=뉴시스)
표현의 자유 VS. 외적 명예
2021년 헌법재판소(헌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형법 규정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 사건에서 합헌 5 대 위헌 4로 합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앞서 2020년 모욕죄 형법 규정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 사건에서는 합헌 6 대 위헌 3으로 합헌으로 판단했습니다. 헌재 재판관들의 의견도 갈린 것입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합헌이라는 입장에서는 이유로 △오늘날 명예훼손적 표현의 전파속도와 파급효과가 빠르고 광범위하며, 일단 외적 명예가 훼손되면 완전한 회복이 어렵다는 점 △개인의 명예에 대한 침해 예방을 위해 형벌과 같은 효과를 확보할 수단이 없다는 점 △헌재와 대법원은 형법 제310조의 적용 범위를 넓게 해석함으로써 표현의 자유 제한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고 있습니다.
모욕죄에 대한 합헌 의견은 △사람의 인격을 공연히 경멸하는 표현이 그 사람의 사회적 가치를 침해하는 행위를 금지할 필요가 있고 △모욕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형사처벌이 가능한 점 △법정형의 상한이 비교적 낮은 점 △법원은 개별 사안에서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 규정을 적정하게 적용함으로써 표현의 자유와 명예 보호 사이에 적절한 조화를 도모하고 있는 점 등을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반면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위헌이라는 입장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하는 점 △헌법 제21조 제4항이 명예훼손의 구제 수단으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명시할 뿐이라는 점 △감시와 비판의 객체인 공직자가 진실한 사실 적시 표현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의 주체가 되면 국민의 감시와 비판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점 △형사처벌 이외에도 정정보도, 반론보도 청구 등 적당한 구제 수단이 다수 존재하는 점 △표현행위로 인해 수사·재판절차에 회부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모욕죄가 위헌이라는 입장은 △‘모욕’의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므로 헌법상 보호받아야 할 표현까지 규제될 수 있는 점 △다양한 표현을 바탕으로 한 토론과 비판을 제한하는 점 △민사적 책임을 지우는 것으로 충분한 점 △혐오 표현은 따로 처벌하는 법률을 만드는 것으로 충분한 점 △국제인권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는 점 등을 근거로 듭니다.
두 범죄의 위헌성에 대한 헌재의 판단은 합헌 의견이 우세하지만, 형사처벌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결과적으로 민주주의 사회의 자정작용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는 측면에서 반대 의견의 설득력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러한 논거를 바탕으로 두 죄에 대해 폐지를 논의하는 움직임도 존재했으나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헌재의 법정 의견과 같이 ‘개개인이 표현의 자유의 무게를 충분히 인식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분위기가 성숙되어 형사처벌이라는 수단을 없이도 개인의 명예가 보호될 것이라는 국민적 합의나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 두 죄를 폐지하는 전제조건일 것입니다.
이렇게 찬반의 입장이 팽팽하고 모두 설득력이 있는 사안의 해결은 민주적 정당성의 차원에서 입법적인 해결이 바람직하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국회에서의 논의는 여전히 제자리여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습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