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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분단국에 띄우는 '음의 무지개' 미하엘 로터
'전자음악계 비틀스' 크라프트베르크 초기 멤버이자 노이!·하르모니아 중추
입력 : 2023-09-14 오후 5:15:16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지난 2일 강원 철원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현장. 메인 헤드라이너(간판출연진)로 선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음악가 미하엘 로터의 무대는 흡사 비단 잉어들이 펄떡거리며 춤추는 비트와 리듬의 대양. 
 
전자 샘플러들의 성채에서 흘러나오는 오색찬란 선율들과 일렉기타에서 터져나오는 빛 같은 소음, 4분의 4박자로 반복의 미학을 만들어내는 드럼과 베이스의 약동을 지켜보다 별안간 깊은 전자음악의 심해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습니다.
 
로터는 전설적인 전자음악 밴드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의 초창기 멤버(1970년 결성 초기 탈퇴)이자, 1970년대 초 록 음악에 포스트모더니티(전자 테크놀러지/샘플링 등을 접목) 실험을 구현한 노이(Neu!, 결성), 하르모니아(Harmonia)의 중추 인물입니다. 
 
지난 2일 강원 철원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미하엘 로터 무대 모습. 사진=DMZ피스트레인뮤직 페스티벌 사무국
 
지난 1일 서울 홍대의 한 호텔에서 만난 로터는 “1990년 독일 통일은 33년도 더 된 역사이지만, 그 과도기를 체험한 내게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연하는 감회는 남다르다”며 “평화와 자유 자체인 내 음악이 국경을 넘어 긍정적인 울림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로터의 음악은 독일을 대표하는 대중음악 장르인 크라우트록(60년대 말 미국 중심의 록 음악에 반발해 사이키델릭/전자음악/재즈 등의 요소를 섞어낸 전위적 록 장르)의 효시격이며, 대중음악 사에서는 후대 포스트펑크와 포스트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습니다. 
 
“지난 50년의 음악 세월을 돌아보면, 제 음악이 후대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예상은 결코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창작 아이디어를 음악에 투입시키는 데 전 그저 집중했을 뿐이었거든요. 구 서독의 언더그라운드 문화에서 다행히 제 음악을 찾아듣기 시작했어요. ‘하르모니아’도 처음 나왔을 땐 반응이 없었죠. 30년 후 사람들이 좋아하기 시작하더군요. 그저 현재에 충실한 창작활동을 하는 것, 그리고 나서 그 반응을 기다리는 것, 저는 이게 예술가가 가진 운명이라 생각합니다. 당장 1년도 내다볼 수 없지요.” 
 
지난 2일 강원 철원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미하엘 로터 무대 모습. 사진=DMZ피스트레인뮤직 페스티벌 사무국
 
그가 잠깐 몸 담았던 크라프트베르크는 ‘전자음악계의 비틀스’. 지구상 현존하는 모든 전자음악의 다양한 문법들의 시초가 된 밴드이자 U2나 데이비드 보위, 마이클 잭슨, 콜드플레이 같은 팝과 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밴드입니다. ‘발전소’라는 뜻의 이 밴드는 기술문명과 과학기술을 주제로 전자음들을 모르스부호처럼 길게 늘어뜨리는 지독한 악곡으로 유명합니다. 내한 공연 때도 3D 비주얼과 보코더(목소리를 기계음화 시키는 장비) 등을 두른 ‘늘 첨단인 음악들’을 선보였습니다. 
 
“플로리안 슈나이더(크라프트베르크 중추 멤버)와 음악적 투쟁에서는 늘 마찰이 있었지만, 그의 음악을 듣는 것은 제게 늘 중요한 영감의 순간이었습니다. 특히 라이브 때마다 선보이는 전자 플루트 연주는 지금도 정말 아름답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계 대중음악계에서는 슈나이더의 ‘크라프트’가 금속성에 가까운 기계 음악이라면, 로터의 ‘노이!’는 기계를 활용한 인간미의 음악이라는 의견들이 있습니다. 이번 DMZ 무대에서도 ‘Weissensee’, ‘Hallogallo’ 같은 ‘노이!’의 대표곡들부터 ‘Maultrommel’, ‘Dino’ 같은 하르모니아 곡들을 오간 선곡들로 관객들과 만났습니다. 파도처럼 굽이치는 드럼의 반복적 리듬 격동에 기타와 샘플러들의 서정적인 선율들이 교차할 때, 기계 톱니바퀴 이면의 대자연 같은 그림이 연상됐습니다. 
 
지난 2일 강원 철원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미하엘 로터 무대 모습. 사진=DMZ피스트레인뮤직 페스티벌 사무국
 
그에 앞서 이 DMZ 무대에는 영국 펑크록 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베이시스트 글렌 매트록, 벨벳언더그라운드의 존케일 같은 거장들이 다녀갔습니다. 지정학적 긴장의 해소야말로 문화 만이 보여줄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존 케일의 벨벳언더그라운드는 인류의 심장박동을 울리는 뭔가가 있어요. 저 또한 제 리듬에 관객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 집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영혼들에 미치는 강력한 힘은 음악과 문화에서 나오며, 그것은 빠르게 전진해 자유와 평화를 이끌기도 하죠.”
 
자신의 음악을 색깔로 표현해달라는 요청에 그는 “무지개”로 답했습니다.
 
“7가지 색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자세히 뜯어보면 교차점에 다양한 색상들이 겹쳐있잖아요. 인권과 자유의 상징 색이기도 하고요.”
 
독일 통일을 눈 앞에서 지켜본 로터는 “국가의 압력 메커니즘에 이기지 못해 사람들이 갑자기 거리로 터져나가던 그 날의 기억 또한 매우 선명하다”고 회상했습니다.
 
“유혈사태와 군 지도자들의 오만, 정치적으로 옳지 못한 결정은 미친 짓에 가까웠습니다. 부끄러운 나치 시대부터 최근의 러시아-우크라 전쟁 사태, 북한의 미사일 같은 일들은 결국 그릇된 인류사의 반복입니다. 국가는 사람들의 자유와 평화를 억압할 권리가 없습니다. 제 음악이 국경을 넘어 약간의 기쁨과 평화, 행복을 기원하는 긍정의 작은 진동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2일 강원 철원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미하엘 로터 무대 모습. 사진=DMZ피스트레인뮤직 페스티벌 사무국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권익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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