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에선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서 우리 겨레와 관련한 유일한 기록인 <조선열전(朝鮮列傳)>을 검토한다. 사마천은 “뛰어난 역사가”라고 칭송만 받아왔지만, 이 글은 그에 대한 반박이다. 사마천의 《사기》는 중화주의와 같은 구조인 본기-세가-열전의 위계 서열 구조가 골자다.《순자》<정론>에는 고대중국이 자신을 중심으로 세계를 ‘오복(五服)’으로 나눈 중화주의가 실려있다. 이를 요약하면, 고대중국 왕성 사방 500리는 왕 직할인 ‘기복(甸服)’이고, 그 바깥 500리는 동성(同姓) 제후들의 ‘후복(侯服)’, 그 바깥 500리는 이성(異姓) 제후들의 ‘빈복(賓服)’, 그 바깥 500리는 남쪽과 동쪽 오랑캐[만이(蠻夷)] 지역인 ‘요복(要服)’, 그 바깥 500리는 서쪽과 북쪽 오랑캐[융적(戎狄)] 지역인 ‘황복(荒服)’이라는 편협한 세계관이다. 고대 중국이 실제로 그랬다는 게 아니라, 사방 오랑캐의 복속을 멋대로 규정한 자기중심적 세계관이다. 중화주의는 내가 존엄하면 남도 존엄하다는 초보적 상호주의적 사유도 없는 유아적 세계관이다. 사마천은 이를 기초로, ‘기전체(紀傳體)’라는 역사 서술 형식을 발명했다.

‘기전체’란 먼저 본기·세가에 중원의 역사를 담고, 열전에 신하들의 전기를 담은 뒤, 신하 수준인 ‘열전’에 <조선열전>과 흉노·월·서남이·대원 등 사방 ‘오랑캐 열전’을 붙였다. 중국인들은 중화주의의 문제점에 대해 자각이나, 극복 노력이 없다. 마오쩌둥 등 공산당 지도자들도 포함해서 역사상 중국인들 가운데 중화주의를 비판한 이조차 단 한명도 없다. 중국의 국가적 역사왜곡인 ‘동북공정’에 참가한 어용학자들은 지금도 중화주의 관점에서 역사를 왜곡한다. 이렇게 중화주의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역사서술에 차등을 두겠다는 발상은 《사기》의 어떤 미덕도 상쇄한다. 글의 체계는 평등해야 한다. 포폄은 글의 내용에 담아야지 형식에 차등을 두는 것은 말이 안된다. 역사에 차등을 두겠다는 것은 위계 강박증에 걸린 발상이다. 어떤 소설가가 주인공 이야기는 본기에, 주변 인물은 세가에, 단역들은 열전에 담는 방식으로 소설을 쓰겠는가. 어떤 역사든 소설이든, 주인공과 단역들이 대등하게 등장해 상호작용하며 엮어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중화주의는, 유럽중심주의 등과 더불어, 우리가 문화다양성의 세계를 위해 없애야 할 세계관이다.
중국 역사학의 비조라 불리는 사마천(司馬遷). 사진=필자
<조선열전>에 따르면, 서기전 109년 한무제가 고조선을 침략했다. 육·해로 둘로 나뉘어, 해로는 양복이 5만의 군사로 발해를 건너왔고, 육로는 순체가 요하로 침략했다. 한무제의 고조선 침략은, 세계시민이 함께 음미해야 할, 강대국과 약소국의 관계맺음에 대한 사고를 촉진한다. 강자는 약자를 지배할 권리가 있는가? 폭력으로 문제를 다 해결한다면 정의와 평화는 사라지고 인류는 석기시대로 역행할 것이다. 인류는 이 부조리를 극복할 때 더 높은 수준의 인류가 될 것이다. 우리는 한의 고조선 침략사를 읽으며, 여기 담긴 세계관의 대립을 함께 읽어야 한다. 육·해 양면의 패전 보고를 들은 한무제는 위산을 사자로 보내 우거왕을 압박했다. 우거왕은 사자 위산에게 항복할 뜻을 전하고 아들인 태자를 한에 들여보내 사죄하겠다고 했다. <조선열전>을 면밀하게 읽어보면 이는 고조선의 ‘거짓 항복’임을 알 수 있다. 사신 위산과 순체는 태자 일행을 데리고 패수를 넘었는데, 태자 일행이 사단 병력 수준인 1만 명이나 되는데다, 모두 무기를 지닌 무장병력이다. 이 항복이 거짓 항복이었음을 보여준다. 위산과 순체는 태자에게 “1만 명에게 무장해제 명령을 내리라”고 부탁한다. 태자는 이들의 말을 안듣고, 일행들과 철수한다. 이 사건은, 고조선 지도부의 대담함과 유연함을 보여준, ‘트로이 목마 퍼포먼스’와 견줄 만한 세기적 퍼포먼스다. 양복과 순체는 다시 군사를 모아 각각 포위 공격했으나 우거왕이 성을 굳게 지켜 함락시키지 못했다. “두 장군은 서로 협력 역량을 발휘하지 못 했다”고 사마천은 썼다.
평화롭게 삶을 영위하던 이웃 나라 고조선을 아무 이유없이 침략해 멸망시킨 전쟁 미치광이 한무제 류철. 사진=필자 제공
사마천 기록을 음미해보면, 고조선은 아마도 양복과 순체가 서로 공 다툼을 한다는 사실을 파악해 이를 바탕으로 둘에게 각각 항복할 듯한 자세를 취해 둘을 이간질시켰다. 한 무제 또한 둘의 암투를 파악하고는, 공손수를 보냈다. 공손수는 양복을 체포하고 그의 군사를 순체 예하로 병합시켰다. 두 군사를 병합한 순체가 다시 공격하자, 고조선 고위층 여럿이 투항하면서, 항복하지 않는 우거왕을 암살했다. 고조선은 한 무제의 침략 전쟁에 패하여 멸망했다. 그러나 순체는 귀국 뒤 기시(棄市)로 처형당했고, 양복도 처형을 앞두고, 돈으로 사면 받아 평민이 됐다. <조선열전>은 한 무제가 고조선을 침략 멸망시킨 이야기다. 사마천은 <조선열전>의 사론(史論)을 통해, “우거는 성의 견고함에만 의지하다 나라의 제사가 끊어지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사마천은 고조선의 멸망을 우거왕의 탓으로 돌렸다. 우거왕이 성만 믿고 강대국에 복종하지 않다가 나라를 망하게 했다는 것이다. 먼저 침략전쟁을 벌인 자에 대한 비판이나 반성적 언급은 전무하다. 이게 과연 공정한가? 이를 보면, 사마천은 ‘약자는 강자에게 굴종해야 한다’는 비굴한 세계관을 가진 자다. 《사기》는 승자의 일방적 기록이다. 역사는 저절로 평등해지지는 않고, 승자의 일방적 기록에 맞서는 패자의 항변과 기록을 요구한다. 우거왕의 후손인 지은이는 사마천 사론이 말이 안되기 때문에, 정정한다. “한무제는 나라가 큰 것만 믿고 이웃을 침략한 ‘전쟁 미치광이’다. 고조선 우거왕은 소국 군주임에도, 대국에 굴하지 않고 항거한 공이 청사에 빛난다. 사마천은 편협한 중화주의로 본기-세가-열전의 불평등한 위계질서를 만들었고, 이웃을 모두 ‘오랑캐’로 폄하해 이들을 중원왕조에서 신하의 위계인 ‘열전’에 넣어 폭력적 위계질서의 세계관을 재생산했으며, 한무제의 침략을 정당화한, 전쟁 미치광이의 나팔수이다.” 이것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세계관의 충돌이다. 철학이 곧 세계관이라면, 우리 겨레의 DNA 깊은 곳에 반(反)중심주의를 각인한 ‘세계관의 충돌’을 건너뛸 수 없다.
■ 필자 소개 / 이상수 / 철학자·자유기고가
2003년 연세대학교 철학 박사(중국철학 전공),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 2003~2006년 베이징 주재 중국특파원 역임, 2014~2018년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역임, 2018~2019년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대변인 역임. 지금은 중국과 한국 고전을 강독하고 강의하고 이 내용들을 글로 옮겨쓰는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