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 배상과 관련해 우리 기업들이 자금을 출연해 피해를 보상하겠다고 했습니다. 기업들은 "정부가 방침을 정하면 따르겠다"지만 사실은 "왜 우리한테 책임을 넘기냐"는 분위기입니다.
8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행정안전부 산하 재단을 통해 기업들에게 자금을 모을 계획입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일본이 우리 정부에 5억 달러의 경제협력자금을 줬는데, 수혜를 받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내라는 것입니다.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법안을 공식 발표한 6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기업들 "지원 검토" 공식 발표하면서도 부글부글
기업들은 정부의 발표 취지에 따라 기부금 출연 요청을 받게 되면 구체적인 논의에 돌입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포스코는 "정부 발표 취지에 따라 적극적으로 지원 방안을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습니다. KT&G는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 과정을 신중히 지켜보고 있다"며 "사회적 합의 이행 과정에 성실히 협조할 계획"이라고 전했습니다. 한국전력도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배상 방안 발표 전후에 기부금 출연 요청을 한다면 이를 바탕으로 회사 방침을 정할 것"이라는 의사를 전했습니다.
하지만 기업 내부적으로는 부글부글한 분위깁니다. "일본 기업은 빠지고 적자에 허덕이는 우리만 자금을 내야 하냐"는 반응이 컸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국민적 자존심이라는 추상적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피해자들이 제3자 변제 방식을 원하지 않는 상태 아니냐"며 "정부가 법적으로도 안 되는 문제를 억지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라고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 6일 오전 광주 서구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사무실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한 정부의 징용 피해배상 문제 해결 방안 발표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3변제 방식 자체가 편법…배임 가능성도 불거져
정부가 제3자 변제 방식을 들고 나왔지만 기업이 제3자에 해당하지 않는데다 피해자들이 배상금을 거부하는 상태에서는 변제가 불가능하다는 얘깁니다.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는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그런 돈은 굶어 죽어도 안 받는다. 더러운 돈은 안 받는다"면서 우리 기업이 낸 돈은 받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현재 피해자 대다수는 수령을 거부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업계에선 기업이 경제적 이익 없이 자금을 출연하게 되면 경제적 손해로 귀결돼 주주들이 배임 혐의로 경영진을 고소할 가능성도 흘러나옵니다. 이와 관련해 재계 관계자는 "포스코에서 돈을 내는 순간 다음 정권에서 배임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명확하게 불법"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재단을 통해 자금을 모으는 방식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이 관계자는 "행안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 지원재단의 재원으로 배상금이 지급된다는데, 국가 기구가 아닌 곳이 어떤 명분으로 배상의 주체가 될 수 있느냐"고 지적했습니다. 그 외 기업들의 자발적 자금 모금이라고 했지만 과연 자발적이겠느냐는 의문부터 혈세로 운영되는 공기업에 배상금을 부담하는 게 적절치 않을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