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한국 방송에서 비춰지는 대중음악이 '트로트와 아이돌로 양분되는 세계' 만이 아니었습니다.
정통 록부터 포크, 솔로 발라드, 세미 트로트까지 즐겨보라는 이들의 표현처럼.
한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 송골매가 설 연휴 KBS 대기획 '40년만의 비행'으로 안방을 찾았습니다. 지난해 배철수(70)와 구창모(69)가 38년 만에 진행한 전국투어 '열망'을 방송 버전으로 새롭게 제작해 내보낸 것입니다.
설 연휴 KBS 대기획 '40년만의 비행'으로 안방을 찾은 록 밴드 송골매. 사진=KBS
지난달 10일 경기도 고양 일산 킨텍스에서 진행된 공연을 녹화한 영상은 전국 투어의 대부분의 콘셉트를 차용하되, 설날전 국민 전 세대가 즐길 수 있도록 꾸민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무대 양쪽 송골매 상징인 대형 날개가 등사기처럼 켜고 황금 골조물이 내려오자, 세월의 먼지가 소멸하더니, 시계가 거꾸로 돌았습니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습에/내 마음을 빼앗겨 버렸네/어쩌다 마주친 그대 두 눈이/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네"('어쩌다 마주친 그대(2집, 1982))'
설 연휴 KBS 대기획 '40년만의 비행'으로 안방을 찾은 록 밴드 송골매. 사진=KBS
고희이거나 목전에 둔 두 사람은 1980년대 활동 당시 기성 가요계와 방송사의 경직된 문화를 타파한 록 밴드이자, 자유로운 청년문화의 표상, 그대로 무대에 섰습니다. 이날 두 멤버는 '어쩌다 마주친 그대(2집, 1982)'와 '모여라'(9집, 1990)' 같은 대표 히트곡들로 시작해 역사를 되짚어 갔습니다.
송골매는 1979년 한국항공대학교 캠퍼스 밴드 활주로 출신 배철수를 중심으로 결성됐습니다. 이후 1982년 홍익대 캠퍼스 밴드 블랙테트라 멤버 구창모와 김정선을 영입하면서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구창모 영입 이후 발표한 2집 타이틀곡 ‘어쩌다 마주친 그대’가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이후 구창모의 유려한 미성 고음을 앞세운 특유의 송골매 인장의 록 음악으로 ‘모두 다 사랑하리(2집, 1982)’, ‘처음 본 순간(3집, 1983)’ 등을 잇따라 히트시켰습니다.
이번 대기획에서도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여라'를 시작으로 활주로와 블랙테트라 시절의 곡들까지 라이브로 구현하고 그때 풀지 못했던 비화를 만담으로 엮어내는 시도로, 송골매의 원형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송골매의 기억을 공유하는 대부분은 중장년층이 주를 이뤘지만, 이날 장내에는 기타리스트가 꿈이라는 10대부터 20, 30대까지 청년 관객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설 연휴 KBS 대기획 '40년만의 비행'으로 안방을 찾은 록 밴드 송골매. 사진=KBS
배철수는 "록밴드 콘서트 사상 평균 연령이 가장 높은 공연이 아닐까 한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10대 청년을 무대로 올려 LP에 사인을 해주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날 구창모는 송골매 노래 말고도 1978년 TBC 해변가요제 수상곡인 블랙테트라의 '구름과 나', 1985년 발표한 솔로 데뷔 음반 수록곡으로 당시 크게 히트한 '문을 열어'·'희나리' 등으로 관객들을 1970∼80년대 추억 속으로 이끌었습니다.
배철수는 구창모 솔로 성공 시절을 회상하며 "구창모가 '희나리'로 1위를 했는데 KBS가 내게 인터뷰 요청을 해 왔다"며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얼굴로 '구창모가 1위에 올라서 기쁘고 여전히 송골매의 일원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또 한국 음악 방송 사상 최악의 사고로 꼽히는 1983년 감전 사태를 이야기하며 "당시 구급차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서 악기를 싣고 온 용달차에 실려서 병원으로 갔다"고도 회상했습니다.
이날 공연에서는 엑소의 수호와 장기하, 배우 이선균이 '깜짝 게스트'로 등장해 송골매의 곡들을 재해석하는 무대도 펼쳤습니다. 음악다방 DJ와 턴테이블, 활주로 LP, 유선 전화기, 브라운관TV, 80년대 디스코 댄스, 롤러장... 향수에 젖게 하는 제작 영상들을 쏘아올리기도 했습니다.
'하늘나라 우리님'과 '탈춤' 같은 우리 말맛을 살린 가사들이 흘러나올 때, 탈 가면을 쓴 안무단들이 줄지어 얽혀 무대까지 올라오는 진풍경도 연출됐습니다.
설 연휴 KBS 대기획 '40년만의 비행'으로 안방을 찾은 록 밴드 송골매. 사진=KBS
앞서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시청자광장에서 이번 방송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배철수는 "송골매는 가수가 아니라 밴드"라며 "가수들은 스포트라이트가 노래하는 사람에게만 집중되지만, 밴드는 전체적인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에 초점을 둔다. 드럼, 베이스, 기타 하나 하나 밴드 음악의 진수를 맛보시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이 기획의도에 맞춰 이날 기타 함춘호, 베이스 이태윤을 필두로 연주자들이 배철수, 구창모와 무대 위에서 뒤엉키는 모습들이 자주 비춰졌습니다. "정신건강을 위해 음악도 편식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에도 이런 다양한 록 장르들이 있다는 것을 모든 세대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던 간담회 때 배철수의 바람대로 이번 송골매 공연을 계기로 한국 대중음악 방송의 장르 역시 다변화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KBS 대기획 콘서트는 지난 2020년 추석에 ‘가황’ 나훈아의 콘서트를 시작으로 2021년 ‘트로트 발라드 여왕’ 심수봉 그리고 2021년 연말 ‘트로트 스타’ 임영웅 콘서트까지 성공시킨 데 이어 연타석 홈런을 치게 됐습니다.
실제로 22일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이날 방송 시청률은 6%로 집계됐습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