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상했다. 임기 초반부터 권력누수(레임덕) 징후가 몰아닥쳤다. 이명박(MB) 전 대통령도 박근혜 전 대통령도 피하지 못했다. '이명박근혜 판박이' 윤석열 대통령도 위기론에 둘러싸였다. 논란이 생기면 '전 정권 탓'으로 돌렸다. 이 전 대통령은 전임자인 '노무현 책임론'을 내세웠다. 박 전 대통령은 '노동조합(노조)'을 적으로 규정했다. 윤 대통령도 정치적 사안마다 '문재인정부'를 소환했다.
'나는 다르다'는 유아독존적 리더십과 '밀리면 끝장'이라는 위기감이 맞물리자, 상대를 악마화하는 정치 폭력만 횡행한다. 참 정치인은 온데간데없고 정치 모리배들만 남았다. 정치에서 남 탓은 '협치·통합의 적'이다. 불통보다 더 악한 '하지하의 정치'다. 지도자의 용기 있는 결단은 결단코 없다.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지도, 허물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수오지심(羞惡之心·의롭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 리더십은 애초 들어설 공간이 없다. 반대편에 대한 '붉은 딱지', 딱 거기까지다.
대신 길이길이 남을 신조어만 난무한다. '원조 친이(친이명박)'계니, '진박(진짜 친박근혜)'이니,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이니…. 공당은 간데없고 끼리끼리 모이는 패당만 있다. 소통 대통령을 앵무새처럼 읊조리던 이들이 '패거리 가림막'에 숨은 꼴이다.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을 거부한 윤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도 건너뛰었다. 결론부터 말하자. 레임덕은 새벽같이 온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한때 일말의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기대는 일장춘몽으로 끝났다. 권력의 내리막길이 엿보인다. 윤석열 위기론의 속살은 '리더십 문제'다. 5년 단임제 특성상 대통령의 운명은 통치 스타일에서 갈린다. 선출 권력의 최정점에 서 있는 대통령은 '무한 책임'을 가진다. 과이불개(過而不改·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음)는 위정자에겐 최악의 리더십이다.
윤 대통령은 어떤가. 용산 상공이 뚫린 북한 무인기 논란도 '문재인정부 탓'이다. 분열의 정치도, 파탄 난 안보도, 불안한 경제도 '전 정권'이 원흉이다. 유아독존적 리더십의 결과는 '묻지마식 전 정권 색 빼기'로 이어졌다. '국민통합의 주춧돌'이라던 5·18 민주화운동을 새 교과과정에서 삭제한 게 대표적이다.
'나는 옳다'는 무오류의 지도자는 '만기친람' 유혹에 빠진다. 지도자가 모든 정사를 친히 보살피는 순간, 참모 손발은 묶인다. 유능한 참모는 나가떨어진다. 이성계 옆에서 조선 건국에 일조한 '경세가' 정도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정왕후 폐위를 기도한 '조선의 간신배' 김안로만 활개 친다. 만기친람 리더십에선 '현대판 십상시'만 출몰한다는 얘기다.
리더십이 무너지면 국정 전반이 흔들린다. 알맹이 없는 정책 어젠다를 남발한다. 경제민주화 프레임을 앞세워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한 박 전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꺼냈다. 통일 대박론도 폈다. 전임자인 이 전 대통령은 비즈니스 프렌드리(친기업적)를 골자로 한 MB 노믹스를 주창했다. '탈이념·탈규제·친기업'의 윤석열 노믹스도 MB 노믹스의 판박이가 아닌가. 뼛속까지 MB스러운 윤 대통령은 지난해 연말 특별사면에서 이 전 대통령의 족쇄를 풀어줬다. 130억원의 벌금 중 미납분 82억원도 면제했다. 사과 한마디 안 한 국가 최대 경제사범에게 명분 없는 특혜를 준 셈이다.
그러나 노동자에겐 다른 기준이 적용됐다. '최저임금을 달라'는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470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당했다. 정부의 역할은 없었다. 이 전 대통령의 82억원 면제와 노동자에 대한 470억원 손배소. 한국 사회의 민낯이다.
그사이 당의 온통 관심은 '공천 잿밥'에 가 있다. 집권 2년 차 성과를 위한 액션플랜(실행계획)은 없다.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 공천권을 향한 권력투쟁이 당 전체를 옭아맸다.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변수는 '기승전·윤심(윤 대통령 의중).' 윤심과 중도층 소구력은 반비례 관계다. 중도층 소구력을 실기하는 순간, 전당대회 컨벤션효과(정치적 이벤트 이후 당 지지율이 상승하는 현상)는 없다. 총선 승리는 날아간다. 윤석열정부의 개혁 골든타임도 끝난다.
과거 친이계는 '이재오·정두언·이상득' 3인방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자, 당 권력을 친박(친박근혜)계에 뺏겼다. 진박 감별사에 매몰된 박근혜정부는 2016년 총선 참패 이후 몰아친 탄핵의 거대한 파도를 막지 못했다. 군자는 충언역이(忠言逆耳)·곧은 말은 귀에 거슬리는 법)를 가까이하나, 소인은 이를 멀리한다.
최신형 정치부장 kjordan2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