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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는기자)"엄마란 깊은 강 큰 돌다리 놓으며 건너는 존재"
신간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김미월 외|다람 펴냄
입력 : 2022-12-21 오전 12: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엄마가 되는 일은 깊은 강에 아주 큰 돌다리를 스스로 놓으며 건너는 일과 같다. 어렵지만 매일 새로운 곳에 발을 딛는다. 혼자 건너지 않고 함께 건넌다."(작가 안미옥)
 
신간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는 글쓰기와 육아를 동시에 하는 작가 6명과 평론가 1인의 추천사를 엮은 책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는 일하는 여성 10명 중 7명 정도가 결혼을 하고도 계속 일을 한다. 그러나 임신·출산·육아라는 생애주기를 거치며, 그 중 다시 절반이 일을 포기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저자들은 이러한 현실에서 펜을 들고 질문을 던진다. '나는 내 일과 육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으니 행운인 걸까. 나는 워킹맘일까.'
 
김나영 평론가는 "일하는 엄마(워킹맘)라는 말은 마치 엄마라는 정체성에 수상하고 불필요한 수식을 입혀둔 것 같지 않은가"라며 "백프로 엄마가 아닌, 어딘가 특별하고 따라서 불온한 엄마라는 의미로 풀이한다면 그게 이상한가"라고 반문한다.
 
신간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김미월 외|다람 펴냄
 
그에 따르면, 글쓰기와 육아는 닮은 구석이 많다. 우선, 글쓰기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다. 세계와의 관계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왜 존재하고 존재할 수 있을지 사유하고 감각하는 과정이 발현된다는 점에서다. 거듭 '나'를 반성하며 '나'를 발명한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시에 새로운 '나'를 마주하는 일이다. 피와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된 그 자리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엄마인 '나'도 태어난다.
 
"그러니까 완성형인 엄마가 있어서 그 엄마로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게 아니라 아이를 키우며 엄마인 자신도 함께 키우는 게 육아다. 온통 처음인,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는, 길도 이정표도 시계도 문도 하나 없는 그곳에서 어떻게든 한걸음씩 움직이며 그곳에 '나'를 기입하는 일은 글쓰기나 육아나 마찬가지다."
 
작가 백은선은 엄마로 산다는 것은 '천국을 등에 업고 지옥불을 건너는 것' 같다고 말한다. '혹시라도 놓치면 다 타버릴' 불안을 헤쳐가며 '무사히 지나가기를 소망'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어두운 새벽, 아이 곁을 몰래 빠져나와 책상 앞에서 글을 쓰곤 했다. 경력 단절이 무서워 온통 '아이' 뿐인 이야기들을 시어로 엮은 적도 있었다. 
 
작가 안미옥은 '4~7살까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라는 육아 광고를 돌아보며 "그런데 양육 시기의 중요성에 대해 외치는 말들을 모두 모아보면, 매 순간 골든타임이라 외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돌이킬 수 없다'는 말은 자꾸만 '완벽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그 메시지 속에 함몰되다 보면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시간과 돈에 허덕이게 되고, 여유가 없게 된다. 불안과 조장하는 말을 떠나 새로운 언어로 이 시기(양육 시기)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된다."
 
작가 김이설은 손자를 업고 유리창에 원고를 붙여 소설을 썼다는 '토지' 박경리 선생의 일화를 자신과 등치시키며 "그런 일 따위는 모든 엄마들이 겪었을, 그저 보편적인 이야기일 뿐"이라 한다. 작가 이근화는 "평생 소비하는 인간으로 살다 죽도록 설계돼 있는 이 삶에서 여성 작가들은 경제적 주체로 자리 잡기도 어렵다"며 "그래서 다른 일을 감당하며 글쓰기를 하는 많은 젊은 여성들에게 조금 더 기회와 여유가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언제까지나 가난과 억압, 고통과 한계를 창작의 동력으로 삼을 수는 없다"고 짚는다.
 
'쓰지 못한 몸으로 잠든 밤'이 스스로도 많았다는 소설가 정이현이 추천사를 썼다. 그는 "'나는 엄마로서도 시인으로서도 자주 실패한 하루를 산다.' 이런 문장을 읽고서 가슴이 무너지지 않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아이를 키우는 여성 작가는 매일 이상한 전장에 서 있다. 가장 사랑하는 두 대상이 서로를 끊임없이 밀어내고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칼끝을 겨누는 것만 같다. 그런데 그들이 여기 이렇게, 함께, 그 분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멀리 있는 희미한 빛을 놓지 않고 안간힘을 다해 또 하루를 살아가는 진심과 희망에 대하여. 계속 쓰는 한, 포기하지 않는 한, 흔들리는 먼빛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권익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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