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1980년대 발생한 국가의 대규모 인권침해 사건인 이른바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와 유족들이 국가와 부산광역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는 6일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와 유족 75명을 대리해 국가와 부산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민변은 "형제복지원은 ‘부랑아’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가족이 있고 신원이 확실한 일반 시민을 포함해 많은 사람을 자의적·무차별적·폭력적으로 ‘부랑인’으로 선별해 강제수용했고 사회로부터 장기간 강제격리했다"면서 "그 과정에서 국가의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협조, 비인간적인 방조, 기민한 은폐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들은 사법적인 절차를 통해 개별적인 진실을 밝히고, 사건 당시 사회적으로 ‘부랑아’로 낙인찍히고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나 국가로부터 그 존재가 부정당했던 피해자임을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민변은 아울러 "피해자 개개인은 형제복지원 사건으로 인해 받은 고통이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로 인한 것임을 폭로하는 한편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스스로 자존감을 회복하고자 한다"면서 소송 배경을 밝혔다.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서산개척단 등 과거사 피해자들이 2020년 5월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TV중계를 통해 본회의를 지켜보다 과거사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기뻐하고 있다. 서산개척단 피해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형제복지원 사건'은 한국의 '아우슈비츠, 살아있는 지옥'으로 불린다. 부산에서 민간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된 사람들이 수용 생활 중에 강제노역·폭행·가혹행위·사망, 실종 등 중대한 인권침해 피해를 당했다.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총 3만8000여명이 강제수용됐고 이 중 657명이 사망했다. 한국전쟁 이후, 정부가 전쟁·생활고 등으로 가족이 해체되었거나 가족으로부터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소위 '부랑아'들을 '치안·안보'라는 미명 아래 단속·수용하기 시작한 것이 발단이었다.
1987년경 검찰 수사를 통해 사건의 실태가 일부 드러났으나 운영자 박인근은 특수감금과 횡령, 외국환관리법 위반, 건축법 위반 등으로 기소됐으나 1989년 7월 대법원은 횡령죄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6개월을 확정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서정리위원회'가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결정을 내린 것은 그로부터 33년 뒤인 올해 8월24일이었다.
진실화해위는 "부랑인을 정의하고 단속과 강제수용의 근거로 삼은 관계 법령, 지침, 계약뿐만 아니라 실제 경찰 등의 단속 행위에서도 위헌·위법해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등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훼손한 중대한 인권침해가 확인됐다"며 "피수용자는 강제노역, 폭행, 가혹행위, 성폭력, 사망에 이르는 등의 인간 존엄성을 침해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는 각종 시설에서의 수용과 운영 과정에서 피수용자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시행해야 한다"며 "특히 부산시는 형제복지원 피해자의 조사와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을 위해 적합한 예산·규정을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실화해위가 인정한 피해자는 모두 72명이었으나 피해자 중 1명이 사망하면서 그의 소송상 원고 지위는 가족 4명이 이어받게 됐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동진 형제복지원 피해자협의회 회장 등 피해자 30명은 지난해 12월
국가를 상대로 132억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