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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산업 1세대'…구자학 아워홈 회장 영면
'기술력만이 답' 산업분야 막론 경영 일선 뛰어…현장 경영 중시
입력 : 2022-05-12 오전 11:33:03
고 구자학 아워홈 회장이 2018년 아워홈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아워홈)
 
[뉴스토마토 유승호 기자] “국민 생활과 가장 밀접한 먹거리로 사업을 영위하는 식품기업은 막대한 사회적 영향력과 책임감을 동시에 짊어져야 한다”
 
향년 92세, 숙환으로 별세한 고 구자학 회장은 2000년 LG유통(현재 GS리테일) 푸드서비스 사업부로부터 분리 독립한 아워홈의 회장으로 취임해 20여년 간 아워홈을 이끌었다. 은퇴하면 경기도 양평에 작은 식당 하나 차리는 게 꿈이었다던 구 회장은 아워홈을 종합식품기업 반열에 올려놓고 영면에 들었다.
 
구 회장은 1930년 7월 경상남도 진주에서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령으로 예편했다. 군복무 시절 6.25 전쟁에 참전했으며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호국영웅기장 등 다수의 훈장을 수여 받았고 미국으로 유학해 디파이언스 대학교 상경학과를 졸업, 충북대학교 명예경제학박사를 취득했다.
 
고 구자학 아워홈 회장이 1981년 럭키그룹 시무식에서 임직원들에게 신년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아워홈)
 
1960년 한일은행을 시작으로 호텔신라, 제일제당, 중앙개발, 럭키(현재 LG화학), 금성사(현재 LG전자), 금성일렉트론(현재 SK하이닉스), LG건설(현재 GS건설) 등 산업 분야를 막론하고 일선에서 뛰었다.
 
1980년 럭키 대표이사 재직 시절, 구 회장은 기업과 나라가 잘 되려면 기술력만이 답이라고 여겼다. 80년대 당시 세계 석유화학시장 수출 강국인 일본과 대만을 따라잡기 위해 기술개발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당시 구 회장은 모든 현장을 찾을 정도로 현장 경영을 중요하게 여겼다. 특히 구 회장은 ‘남이 하지 않는 것, 남이 못하는 것’에 집중했다. 이 때문에 그가 걸어온 길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1981년 럭키의 페리오 치약, 1983년 국내 최초 플라스틱 PBT, 1989년 금성일렉트론의 세계 최초 램버스 D램 반도체 개발, 1995년 LG엔지니어링의 국내 업계 최초 일본 플랜트 사업 수주가 대표적이다.
 
고 구자학 아워홈 회장이 1986년 금성사 대표이사 재직 시절 마이크로웨이브 오븐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모습. (사진=아워홈)
 
2000년 구 회장은 LG유통에서 가장 작은 아워홈 사업부를 분사 독립해 경영의 키를 쥐었다. LG에서 화학, 전자, 반도체, 건설,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핵심사업의 기반을 다진 경영자가 LG유통에서 가장 작은 아워홈 사업부를 분사 독립할 때 주변에서 의아해 하던 일화는 유명하다. 역량에 비해 너무 작은 규모의 사업이라는 이유에서다.
 
구 회장은 음식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먹는 만큼이나 만드는 과정을 좋아했다. 미국 유학 중 현지 한인마트에 직접 김치를 담가주고 용돈벌이를 했다. LG건설 회장 재직 당시 LG유통 FS사업부에서 제공하는 단체급식에 개선점과 불만을 가졌다. 구 회장은 2000년 아워홈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맛과 서비스, 제조, 물류 등 모든 과정에 깊이 관여했다. 직접 현장을 찾아 임직원들과 머리를 맞댔다.
 
고 구자학 아워홈 회장이 2009년 비전선포식에 참석한 모습. (사진=아워홈)
구 회장은 단체급식사업도 화학, 전자와 같이 자신이 몸담았던 첨단산업분야에 못지않은 R&D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아워홈은 단체급식업계 최초로 2000년 식품연구원을 설립했다. 당시 내부에서는 대량 생산만 하면 되는데 굳이 연구원까지는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나 구 회장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아워홈 식품연구원은 설립 이래 지금까지 1만5000여 건에 달하는 레시피를 개발했다. 현재 연구원 100여 명이 매년 약 300가지의 신규 메뉴를 개발 중이다.
 
구 회장은 생산·물류 인프라 구축에도 적극 나섰다. 2000년대 초 구 회장은 미래 식음 서비스 산업에서 생산과 물류시스템이 핵심 역량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시 70세 나이에도 불구하고 생산·물류센터 부지를 찾아 전국을 돌았다. 현재 아워홈은 업계 최다 생산시설(9개)과 물류센터(14개)를 운영하며 전국 어디든 1시간 내 신선한 식품을 제공하고 있다.
 
고 구자학 아워홈 회장이 2009년 프리미엄 웨딩·컨벤션 브랜드 아모리스 오픈행사에 참석한 모습. (사진=아워홈)
해외진출도 빨랐다. 아워홈은 2010년 중국 단체급식사업을 시작했다. 2014년에는 청도에 식품공장을 설립했다. 다양한 중국 식재료를 원활히 수급, 직접 생산해 단체급식 질을 올리기 위해서다.
 
이어 2017년 베트남 하이퐁 법인 설립했으며 2018년에는 M&A를 통해 기내식 업체 하코(HACOR)를 인수하며 기내식 사업에도 진출했다. 하코는 현재 LA국제공항에 취항하는 항공사들에 기내식을 납품하고 있으며 북미 시장 단체급식, 식품사업 확대를 위한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내 업계 최초로 미국 공공기관 식음서비스 운영권을 수주했고 폴란드에 법인을 설립하고 유럽 시장에도 진출했다.
 
단체급식사업과 식재유통사업으로 시작한 아워홈은 현재 식품사업, 외식사업과 함께 기내식 사업, 호텔운영업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종합식품기업으로 거듭났다. 아워홈 매출은 창립 초기 2125억원(2000년)에서 지난해 1조7408억으로 8배 이상 성장했다. LG유통에서 가장 작은 사업부가 거대 조직의 어떤 도움도 없이 연매출 2조원에 종합식품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와병에 들기 전 구 회장은 아워홈 경영회의에서 “요새 길에서 사람들 보면 정말 크다. 얼핏 보면 서양사람 같다. 좋은 음식 잘 먹고 건강해서 그렇다. 불과 30년 사이에 많이 변했다. 나름 아워홈이 공헌했다고 생각하고 뿌듯하다”면서 “은퇴하면 경기도 양평에 작은 식당 하나 차리는 게 꿈이었는데, 이렇게 커져 버렸다. 그동안 같이 고생한 우리 직원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했다.
 
유승호 기자 peter@etomato.com
유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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