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채용비리 관련 판례가 정립되고 있지만 사건 당사자들에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면서 법원 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현재 기업 대표 등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인사에 개입한 경우 위력 혹은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지만 ‘채용비리 청탁자·수혜자’에 대한 조치 관련 명시적 규정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조계와 노동계 등은 입법적 미비를 보완해야 한다는데 모두 입을 모았다.
우선 기업 채용비리에 관한 입법 미비를 내세운 재판부의 형식적 판단이 아쉽다는 목소리가 높다.
노동계에서 오래 활동해 온 권영국 변호사는 “아무리 사기업이라 하더라도 일정한 기준을 갖추고 채용하는 법인이 그 기준을 완전히 벗어나 형해화하는 것은 인사 재량권을 일탈·남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법원에서 채용비리 사건 판단을 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 사회적 지위인데, 이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업무에 일정 부분 개입하고 업무가 정상적으로 진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업무방해다. 법원은 청탁자·수혜자의 지위관계, 그 위력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채용 청탁자·수혜자를 업무방해죄로 규율하는 것은 실질적 피해자를 배제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채용비리 사건에서 인사담당자는 통상 위에서 지시한대로 인사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말 그대로 업무를 못하게 방해한다는 뜻의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면 해당 인사담당자가 정범이 되고 이를 지시한 자가 공범이 된다”며 “그러다 보니 채용비리 사건에선 주로 인사담당자선까지 처벌받고, 이를 지시한 자의 범행은 인정되지 않는 사례가 많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만약 인사담당자 등 모든 관여자들이 짜고 범행을 저지른 뒤 업무방해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하면 모두가 무죄를 받을 수도 있다”며 “(업무방해죄) 피해 주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채용비리 사건 관련 업무방해죄로 인정하는 법리 자체가 일관되지 않고, 무엇보다 공정을 해치는 근원이 된다는 비판이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이상원 교수는 ‘채용비리는 업무방해인가’라는 논문에서 “채용비리에 대한 사회적 비난은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박탈당한 지원자들과 공정가치가 훼손된 사회에 핵심이 있다”며 “면접위원의 업무가 방해됐다고 분노하는 게 아닌데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업무방해죄를 채용비리에 적용하는 것은 불법의 핵심과 무관한 곳에 대해 비난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채용비리 혐의에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것은) 엉뚱한 법률을 적용한 것으로서 성문법률주의에 어긋나고, 적어도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을 불명확하게 하는 것으로서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나 결국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된다”고 역설했다.
현행법상 채용비리에 따른 채용 취소와 피해자 구제 역시 어려운 상황이다. 정해명 공인노무사는 “무조건 (부정채용자) 채용을 취소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근로기준법상 채용 결격 사유 또는 취소 사유가 인정돼야 하는 등 (채용 취소를) 강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부정채용자라고 해도 회사가 근로계약관계를 일방적으로 종료시킬 수 없다는 설명이다.
정 노무사는 또 “채용비리 피해자가 채용(구제)으로 연결되는 것 역시 또 다른 문제”라며 “피해자로선 채용비리가 없었더라면 합격을 했을 가능성을 입증해야 하는 등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안 외에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피해자에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다”며 “채용비리처벌 특별법(류호정 의원 발의, 국회 환노위 계류)은 형법에 기반 해 만들어진 법이지만, 피해자 구제 내용이 담겨 있어 법률로서 회사에 의무를 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보다 구체적이고 실효적 입법이 대안이라는 지적으로, 법원의 재판 기능은 법의 해석이기 때문에 입법 자체로서 해결방안을 마련하지 않는 한 현재와 같은 재판 결과의 모순과 부조리는 계속된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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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