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귀국했을 때, 후배 K가 자신도 중국 특파원으로 나가고 싶다며 내게 조언을 청했다. 나는 그에게 중국어를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중문과를 졸업했지만 회화에는 그다지 능통하지 않다고 했다. 나는 K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우선 덜컥 중국어 학원을 끊어라! 비쌀수록 좋다. 돈이 아까워서라도 듣게 돼 있다. 그러면 당신은 중국 전문가가 되는 첫걸음을 떼게 되는 것이다. 새벽반이 더 좋을 것이다. 남이 보기에 더 절실해 보인다. 사내에, K가 중국 특파원으로 나가는 데에 관심이 있어서 중국어 새벽반을 끊었다는 소문을 내라. 그러면 당신은 어느새 차기 중국 특파원 후보자 가운데 한 명이 되어있을 것이다.”
K는 내 조언대로 해서 나의 차차기 후임자로 베이징에 가는 데 성공했다.
공부란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주는 길과도 같은 것이다. 중국어같은 어학뿐 아니라 새로운 악기의 연주나 새로운 분야의 배움 등은 우리의 삶을 깊고 넓게 만들어줄 수 있다. 우리 몸은 미세한 동작 수만 가지를 익힐 수 있고, 우리 뇌의 1000억 개에 이르는 신경 세포는 새로운 뉴런 신호를 만들며 새로운 악기 연주와 새로운 몸짓(춤사위 또는 운동)이 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으며, 새로운 언어 습득도 가능하게 해준다. 인간의 신체기관 가운데 대뇌만은 미완성인 채로 인간이 태어난다. 태어난 뒤에도 인간의 두뇌는 성숙을 거듭하며 새로운 기능을 확장해간다는 뜻이다. 이를 대뇌의 ‘가소성(可塑性, plasticity)’이라고 부른다. 이런 두뇌를 가지고 태어났으면서 그냥 주어진 대로 살다가 가는 건 아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자연과학자와 ‘차원(demesion)’에 대한 대화를 하다가, 그로부터 “인간은 10²³ 차원”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인간이 지닌 가능성이 그만큼 무한하다는 말이다.
공부, 새로운 삶으로 이끄는 길
중국에 특파원으로 부임했을 때, 중국 외교부가 한국에서 온 특파원들을 위한 환영 만찬을 준비해준 적이 있다. 그 자리에 ‘한-중’ 통역사가 세 명이나 배치된 것을 보고 나는 적이 충격을 받았다. 중국 주재 특파원이라는 사람들이 중국어 통역이 필요하단 말인가! 중국 사람들과 중국어로 소통이 가능하지 않으면서 무슨 취재가 가능하단 말인가! 당시 그런 생각이 내 머리를 떠돌았다. 더 큰 충격은 만찬이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받았다. 베이징의 ‘왕징(望京)’이란 곳은 베이징에서 ‘한인촌(韓人村)’으로 불릴 정도로 중국 거주 한국인들이 집중적으로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나도 왕징에 집을 구했고, 특파원 가운데 중국 온 지 한 10년이 됐다는 선배가 나와 귀가 방향이 같아서 같이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그는 “왕징 갑시다”란 말을 중국인 택시기사에게 중국어로 제대로 할 자신이 없어서 주머니에 중국어로 적은 메모를 넣고 다니며 그걸 택시기사에게 보여줬다. 그 장면은 내게 심각한 충격을 안겨줬다. 중국에 온 지 10년이 됐다는 분이 택시 타고 행선지를 중국어로 얘기할 정도도 안 된다니. 이런 사태는 내겐 절망적이었다. 이 충격은 내가 중국어를 마스터하는 데 크게 자극을 주었다.
여기까지 읽으신 독자들께서 특파원의 중국어 실력이 그 정도로 엉망이라고 오해하시면 곤란하므로 살짝 해명해두자면, “왕징 갑시다(到望京去, 따오 왕징 취)”의 중국어 발음은 동음이의어가 많은 중국어의 특징 때문에 “서울 갑시다(到往京去, 따오 왕징 취)”와 발음이 같아 택시 타는 시람이 이 발음을 제대로 못하면 택시기사들이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에서 “베이징(서울) 가자”는 얘기로 알아들을 수 있다. 성조가 서투른 외국인의 발음을 택시기사들이 바로 알아듣기 어려운 표현이긴 했다.
내가 외국어인 중국어를 마스터한 주요한 방법은 ‘암기’였다. 흔히 ‘암기’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잘못된 편견과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암기’를 수준이 낮은 공부법으로 여기는 이들도 많다. ‘암기’를 ‘이해’와 대립시켜서, ‘암기’를 수준 낮은 공부법으로 여기는 이들도 많지만, 아무리 인공지능 할아버지의 시대가 된다 해도, ‘암기’가 훌륭한 공부 방법의 하나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나는 중국에서 중국인을 만났을 때 내가 중국어로 해야 하는 이야기를 중국어로 작문해서 십여 가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수첩에 적어 가지고 다니며 외웠다. 나 자신에 대한 소개,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소개, 나 자신의 관심 영역에 대한 소개를 10분씩 중국어로 떠들 수 있도록 중국어 문장을 만들어 머릿속에 넣어둔 것이다. 이러면 중국에서 누굴 만나더라도 처음 한 시간 정도는 화제가 마르지 않고 중국어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내 이름의 중국어 발음은 ‘리샹주(李相洙)’인데, 한국인은 내 이름에 나오는 ‘물이름 수(洙)자’ 를 이름에 매우 흔하게 쓰지만, 중국인은 이 글자를 이름에 거의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중국에서 살면서 발견하게 되었다. ‘수(洙)’란 공자의 고향인 산둥[산동(山東)]성 취푸[곡부(曲阜)]를 관통해 흐르는 강물 이름인지라, 유교 문화권인 한국과 중국에서 모두 많이 쓸 법한 글자인데 중국인은 이 글자를 거의 이름에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글자의 발음이 ‘돼지 저(猪)’ 자와 중국어로는 발음이 같기 때문일 뿐이다. 그러므로 내 이름인 ‘샹주(相洙)’는 ‘맛있는 돼지’라는 뜻의 ‘샹주(香猪)’와 발음이 같다. 나는 여기에 착안해 중국인에게 내 이름을 이렇게 소개했다.
“나는 리샹주인데, 맛있는 돼지와 발음이 같다. ‘맛있는 맛’ 할 때의 샹, ‘돼지고기’ 할 때의 주다.”
내가 이렇게 자기소개를 하면 폭소를 터뜨리지 않는 중국인이 없었다. 서울 본사에서 사장이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의 이름은 봉수(봉우리 '봉'+물가 '수', 중국어 발음으로 펑주)였다. 그의 이름의 중국어 발음은 ‘미친 돼지(미치광이 '풍'+돼지 '저', 중국어 발음으로 펑주)’와 중국어 발음이 같다. 내가 그를 중국 합작 파트너들에게 소개하고 다닐 때 중국 친구들은 배꼽을 잡았다. 나는 ‘맛있는 돼지’이고 서울에서 왔다는 사장은 ‘미친 돼지’라고 소개를 하니 중국 친구들에게 이 보다 더 강한 인상을 남기는 오리엔테이션은 있을 수 없었다. 불행하게도 서울에서 온 사장은 성이 최(崔)씨였다. 중국어 발음으로 ‘최고’라는 뜻인 ‘쭈이(最)’와 발음이 같다. 성을 붙여서 ‘쭈이펑주’라고 헤봤자 “가장 미친 돼지”로 들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최씨만의 비극이었다.
‘암기’에 대한 나의 편견을 바꾸어준 일은 중국에서 내가 함께 일하던 차량 운전 기사의 가족들과 만났을 때 일어났다. 나의 아들딸과 운전 기사의 아들딸 연령대가 비슷했기 때문에 나는 내 자녀들을 위해 자연사박물관이나 역사박물관을 갈 때 운전 기사를 청해 그도 자녀들을 데리고 오도록 했다. 소학교(초등학교) 5, 6학년 즈음인 이 아이들은 각기 중국 한시(漢詩)를 백여 수씩 외우고 있었다. 내가 영어와 손몸짓을 섞어 어떤 당시(唐詩)의 내용을 설명하면 이 아이들은 자판기 버튼 눌린 자판기가 상품 토해내듯 한시를 줄줄 외워 내었다. 중국인들에게 이 정도 시는 상식이었다. 그런 시들이 소학교(초등학교) 저학년 교과서에서부터 다뤄진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 한 구절 못 외우는 사람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날 이후 중국 한시를 외우기 시작해서 지금도 틈틈이 외우고 있다. 중국 한시를 중국어로 발음하면서 외우면 중국어 공부하기에 몇 가지 좋은 점이 있다. 동음이의어가 많은 중국 글자의 발음과 성조를 확실하게 알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날 이후 나는 줄잡아 이백 수 이상의 한시를 외웠다. 한시 외우기는 나의 중국어 실력을 한 수준 끌어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연재의 들머리에서 무식하게 ‘암기’식 공부법의 찬사를 늘어놓는 꼴이 됐지만, 이 훌륭한 공부법을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포기할 필요가 없음을 강조하고 싶은 것뿐이다. 공부 방법의 자유로운 선택과 활용은 모두 독자들 각자의 몫이다.
공부는 어렵다? 자신을 위한 공부는 황홀하다
세상의 스승들은 한결같이 공부가 황홀하다 하며 공부를 권한다. 그러나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는 공부가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같은 걸 두고 한쪽은 황홀하다고 하고 다른 쪽은 고통스럽다고 할까? 답은 간단하다. 스승은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것을 공부하기 때문에 공부가 즐겁고 황홀했다. 그러나 제자들은 대체로 자기가 배우고 싶은 걸 배우는 게 아닌 경우가 태반이니 공부가 고역일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승처럼 자기를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 스승 또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스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공부에는 어느 정도 괴로움과 고통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중국어(한자)에는 공부라는 단어에 대한 두 가지 표기가 있다. ‘공부(工夫)’와 ‘공부(功夫)’가 그것이다. 둘 다 중국어 발음은 ‘꿍푸’로 같지만 뜻은 다르다. ‘공부(工夫)’란 육체노동자가 단위 시간에 노동을 투여해 작업해낼 수 있는 분량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우리가 쓰는 ‘공부(功夫)’라는 말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인도의 승려이던 달마(達摩)는 스승인 반야다라(般若多羅)의 말을 따라 중국에 왔다. 그가 중국에서 처음 만난 이는 양무제 소연(梁武帝 蕭衍)이었다. 그는 달마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절을 많이 짓고 사찰에 보시를 많이 했으니, 나의 공덕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달마는 일언지하에 “눈곱만큼의 공덕도 없습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양무제와 달마가 나눈 대화는 이후 선불교에서 중요한 화두(話頭)로 전승된다.
양무제는 자신이 불교 중흥을 위해 돈과 재산을 들인 공덕을 인정해 달라 얘기했지만, 달마는 세상에서 귀하게 여기는 재물보다 불법에 대한 조예를 더 중시하였기 때문에, “눈곱만큼의 공덕도 없다!”라고 잘라서 답한 것이다.
달마는 소림사[少林寺, 오늘날 허난(湖南)성 정조우(鄭州)시 소재]라는 아름다운 절에 정착하여 중국 승려들에게 참선(參禪)을 가르쳤는데, 절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불경만 읽던 승려들은 장시간의 참선을 버텨낼 수 있는 체력이 없었다. 달마는 이들의 체력 단련을 위해 호랑이, 곰, 학, 뱀, 사마귀 등 다섯 생명체의 공격과 수비 동작을 본떠 무술을 만들어냈다고 전해온다. 달마는 이런 단련이 투입 단위 시간에 비례해 수준이 높아지긴 하지만, 산중이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기예, 조예를 연마한다는 뜻을 담기 위해 ‘공부(工夫)’라는 글자를 ‘공부(功夫)’로 바꿨다. 그렇다. 무술을 뜻하는 중국어 단어 ‘꿍푸[쿵후]’는 결국 ‘공부’와 같은 글자다.
고통을 수반하는 공부(工夫)도 일정한 성취에 도달하면 우리에게 만족과 기쁨을 준다. 그러니 자신이 더 깊어지고 더 성숙해졌음을 자각하도록 만들어주는 공부(功夫)를 통해 조예와 경지를 얻었을 때의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고통과 동의어가 아닌 공부(功夫)라 할 수 있다.
그래도 공부에 대해 거부감이 든다면,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안타깝게도 공부가 우리를 배신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 꼭 선하지도, 인격적으로 성숙하지도 않다.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꼭 세속적으로 성공하고 존경받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인간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다.
열 명의 제자백가를 스승 삼아 '나'를 바꾸자
그런 회의에서 벗어나려면 공부는 그 사회에서 ‘성숙’과 동의어여야 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위대한 스승들은 꼬리를 물고 등장했다. 그중 고대 중국 제자백가의 시대만큼 다양한 사상이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등장해 풍요로운 향연을 벌인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 곡부 공자묘. (사진=연합뉴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 그 혼란스러운 시기에 서로 다른 학파가 등장해 격렬한 논쟁을 통해 각자의 주장을 발전시키고 종합해갔다. 이를 백가쟁명이라 부른다. 제자백가는 이 시기에 등장한 사상가들을 모두 가리키는 말로, 기록에 따르면 189가(家)이며, 이들이 남긴 저작은 모두 4324편에 이른다.(凡諸子百八十九家, 四千三百二十四篇。(《漢書》<藝文志>) 전쟁으로 낮과 밤을 지새운 시대였지만, 제자백가들은 쉬지 않고 공부하고 토론했으며, 모든 제후국들이 서로 유능한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이들은 수천 년이 지나도 인류의 스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제 기계가 딥 러닝을 하는 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배울 것인지 더 영리하게 선택해야 한다. 만약 제자백가가 이 시대에 살고 있다면 이 질문에 무엇이라 답했을까? 공부의 본령은 기존의 자기 모습을 버릴 수 있는 힘, 다른 관점의 생각도 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현재의 자기 모습을 고집하지 않으려고 스승을 찾고 배우는 것이다. 인간은 배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 묵자는 실이 물감의 빛깔에 따라 빨강으로도 파랑으로도 노랑으로도 물이 드는 것을 보고 슬퍼했다. 이는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이 길로 갈 수도 있고 저 길로 갈 수도 있음을 보고 한탄한 것이다. 순자는 “푸른빛은 쪽풀로부터 나왔지만 쪽빛보다 푸르다”는 유명한 말로 배움에 의해 인간이 거인으로 변할 수 있음을 알려주기도 했다.
이 연재의 목적도 그것이다. 이 책은 위대한 열 명의 제자백가를 스승으로 삼아 자기를 변화시키는 공부를 해가는 지침이다. 내 안에 이미 갖추어져 있는 지혜를 끄집어내어, 자신을 끝없이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을 이 연재를 통해 발견하기를 희망한다.
이상수 철학연구자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철학과 대학원에서 주역 연구로 석사를, 제자백가의 논리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겨레신문 기자를 거쳐 웅진씽크빅 중국법인장, 서울시교육청 대변인을 지냈다. 공자·노자·장자·손자·순자·한비자 등 제자백가의 사상과 철학에 대한 강의와 글쓰기를 하고 있으며, 고전의 현재적인 번역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원효·김만중·정약용 등 한국철학 연구에 빠져있다. 저서로 <아큐를 위한 변명> <한비자, 권력의 기술> <바보새 이야기>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