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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겨울 강에서 ‘가장자리’를 생각하다
입력 : 2021-12-30 오전 6:00:00
겨울 강, 그 가장자리가 얼어붙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신축년 소띠 해의 마지막이 추위와 몸을 섞느라 분주한 동안, 가장자리 주변을 산책하는 나를 졸졸 따라오는 된바람. 기분 좋은 쌀쌀함을 던져주고 간다.  
 
순간,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가장자리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 존재일까를 생각했다. 가장자리는 추위가 찾아오면 가장 먼저 살얼음이 된다. 더불어, 강의 중심이나 강 여기저기로 흘러가는 강물을 향해 조금씩 얼음이 될 준비를 일러주는 수고로움을 잊지 않는다. 그것이 가장자리의 본능이고 유전자다. 
 
그런 생각을 해서일까. 가장자리는 단순히 ‘강과 사람 사는 세상과의 경계’라는 위치의 개념을 이탈하여, ‘사람과 강을 하나로 이어줄 수도 있다’는 상상으로 이어진다. 꽁꽁 언 강 위를 사람들이 걸을 수 있게 하는 토대는 온전히 가장자리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가장자리의 몫이기 때문이다. 비록, 강의 끝자리나 둘레, 강의 변두리에 자리 잡고 있지만, 결코 얕보거나 평가절하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가장자리는 외롭지 않다. 겨울이 되어도 한가롭게 살아갈 수 없는 천성에 충실하다. 
 
가장자리의 역할은 봄이 찾아오는 해빙기에도 그다지 다르지 않아, 맨 먼저 저 자신을 녹이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강 중심을 향해, 강 여기저기를 향해, 얼었던 몸을 녹이는 방법을 귀띔해준다. 그렇게 보면 강의 가장자리는 강에게 겨울이라는 계절을 알리는 전령사 같은 것. 겨울이 끝나고 있다며 겨울 강을 다독이는 따뜻한 손길 같은 것. 
 
강의 가장자리를 우리 인간 사회에 비유하면 어떨까. 추운 겨울이 찾아오면 맨 먼저 스스로 살얼음이 되겠다고 발을 걷어 붙이는 존재. 과연 그는 누구일까, 세상의 중심이 되겠다는 생각은 갖지 않은 채, 세상의 끝자리 혹은 세상 바깥에서 그저 세상 여기저기로 흘러가는 타인의 삶을 향해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하겠다는 존재. 그는 누구인가, 잠재적으로 가장자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타의 정신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기장자리의 역할과 관련하여 생각하면, 사람은 다분히 가장자리가 아닌 중심이 되려고 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이런 욕구가 지나치면 인간의 슬픔은 시작된다. 다양한 비극이 연출된다. 자신이 아닌 타인은 모두 주변 인물로 남을 것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이 팽배해지면, 자연은 물론이고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아픔을 겪게 된다. 우리가 정말 경계해야 할 것은 이기심이 활개를 치는 세상이다. 
 다음의 시는 우리의 마음을 따스하게 하리라. 읽어보자.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 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은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 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이생진 「벌레 먹은 나뭇잎」 전문    
 
인용 시에서 시인은 ‘벌레 먹은 떡갈나무 이파리’를 베풀 줄 아는 존재로 그린다. 그리고 이파리에 난 구멍을 하늘을 보여주는 장치로 파악하고 있다. 이 얼마나 숭고한 생각인가. 그래서 “남을 먹여 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는 서술은 우리에게 감동을 전해주기에 충분하다. 벌레 먹은 이파리는 하찮은 것이지만, 남에게 베풀었다는 가치는 그 어떤 향기로운 꽃보다도 위대하다. 우리가 이러한 ‘벌레 먹은 나뭇잎’과 같은 생각을 공유할 때, 세상은 아름다운 공간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겨울 강에서 ‘맨 먼저 얼어붙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살아가는 가장자리. 그 가장자리 주변을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나도 가장자리와 같은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고 또 물어본다. 동시에 ‘모든 것의 중심이 되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집착이 나를 헤치고 있다는 생각도 밀려온다. 봄이 오면 꽃들이 가장 먼저 강의 가장자리로 향기를 보내줄 것이다. 그러면 가장자리는 그 향기를 강 여기저기에 전하는 본능에 충실하리라. 아, 가장자리여. 아름다운 이름이여.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
 
홍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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