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신주 인수 계약을 체결한 투자자에게 주식 발행 등과 같은 회사의 중요 경영사항에 관한 ‘사전 동의권’을 주는 약정은 무효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사전 동의권’과 같은 강력한 경영상 재산상 권리를 신주인수인에게 부여하는 것은 주주평등 원칙에 반한다는 지적이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16부(재판장 차문호)는 디스플레이 제조업체 A사가 컴퓨터시스템 제조·판매회사 B사를 상대로 낸 상환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1심 판단을 뒤집고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A사에게 신주발행 ‘사전동의권’과 ‘위반 시 조기상환 청구권 및 위약벌청구권’을 부여한 해당 약정은 신주 인수로 주주 지위만을 갖게 된 A사에 대해 다른 주주들에게는 인정되지 않는 우월한 권리를 부여한 것”이라며 “이는 회사의 경영에 강력하고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일 뿐 아니라 그 위반 시에는 배당 가능 이익의 존부와 상관없이 언제든지 출자금의 배액을 초과하는 금액의 반환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실질적 주주에 대해 투하자본의 회수를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주주평등의 원칙에 반하므로 ‘무효’라는 판단이다.
또한 “현행법 체계는 회사와 신주인수인 사이에 별개의 약정으로 주식에 표창된 권리를 넘는 권리 또는 권한을 부여하고 그 위반 시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방법으로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며 “이를 허용할 경우 기존회사로 하여금 신주발행 형식으로 통해 실질적으론 이른바 ‘황제주’와 같은 사실상 법이 허용하지 않는 내용의 종류주식을 발행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게 될 우려가 있다”고 보았다.
앞서 2016년경 자금 사정이 악화된 B사는 자금 조달을 위해 그해 12월 신주 20만주를 발행했다. A사는 20만주의 B사 발행 신주를 2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양사는 신주인수계약을 체결하면서 B사가 추가로 신주를 발행할 경우 A사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하고, 이를 위반 시 투자금 조기상환과 함께 20억원의 투자금 상당액을 별도로 물어내야 한다는 ‘위약벌’ 약정을 체결했다.
이후 B사는 2018년 8월 18만주, 같은 해 11월 8만주의 신주를 발행했는데, 이때 A사의 사전 동의를 받지 않았다. 이에 A사는 B사를 상대로 투자금의 조기상환금 20억원 및 위약벌 20억원 및 이에 대한 이자 등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해당 약정이 상법상 기본 원리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 B사가 A사에 43억6515만원 및 이자·지연 손해금을 지급해야 한다며 원고 일부승소로 판결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파기하고 B사 측 손을 들어줬다. 법원 관계자는 “(이번 항소심 판결로) 주식회사가 신주발행을 통한 자금조달과정에서 투자자(신주인수인)에게 사전동의권과 같은 강한 경영상 의무를 직접 부담하는 계약이 금지돼 회사의 경영권이 보호되고, 기존 주주와 사후 투자자 사이에 주주로서의 지위가 불평등해지던 것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서울법원종합청사. 사진/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