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중앙아메리카의 니카라과에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라는 독재자가 집권했었다. 쿠데타로 집권해 정적들을 탄압하고, 자신과 일족의 권력 및 재산 불리기에 몰두한 모범적인(?) 독재자였다.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미국은 중남미 내 자국의 영향력 유지를 위해 소모사 정권을 인정하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소모사는 개XX일 수도 있지. 하지만 우리 개새끼야.(Somoza may be a son of a bitch, but he's our son of a bitch.)"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떠돈다.
이는 자국의 이익 앞에서 이념이나 주의주장, 정치체제 등은 큰 의미가 없다는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된다.
2. 커져가는 북한의 외교적 가치
트럼프 행정부 시절 악화되던 미중 갈등이 바이든 행정부 들어 더더욱 악화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경제적' 이유로 중국을 압박했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경제'는 물론 '민주주의 이념'을 내세워 중국을 몰아붙이고 있다. 그 근원에는 2인자의 부상을 견제하는 1인자의 경계심이 자리한다.
특히 미국이 최근 알래스카 미중 고위급 회담에서 '홍콩, 대만,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언급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중국은 이들 지역을 자신의 영토로 규정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탈중국 움직임이 있는 곳들이다. 만약 미국이 이들의 독립을 측면에서 지원한다면?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북한의 '운신 폭'도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게 있어 북한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유지 차원에서 활용가치가 높은 카드다. 미국의 영향력을 한반도에서 저지할 수 있는 방파제이기도 하다.
반면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을 '우리 개XX'로 만들 수 있다면 보다 직접적인 중국 압박이 가능하다. 다만 북한이 중국에 완전히 넘어가도 딱히 아쉬울 부분도 없다. 북한 미사일 위협을 이유로 '사드(THAAD)'를 배치한 것처럼, 북한의 잠재적 위협에 대응해 남측에 보다 막강한 군사력을 배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외교적 줄다리기를 타며 실리를 추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셈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말이 통했던 트럼프가 떠났고 바이든이 왔다. 과연 바이든은 믿을 수 있는 대화상대인가.
3. 북한과 중국의 복잡미묘한 관계
사실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복잡미묘하다. 경제적으로는 의존하고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거리를 두고 있다. 중국이 랴오닝성(遼寧省), 지린성(吉林省), 헤이룽장성(黑龍江省)과 함께 북한을 '동북4성'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2000년대 초반부터 나왔다.
그렇기에 김정일은 유언에 "역사적으로 중국이 우리나라에 어려움을 강제해 온 사실을 가슴에 새기고 주의하라. 중국에 이용당하는 것을 피하라"고 당부했고, 김정은은 측근들에게 "일본이 100년의 적이면, 중국은 천년의 적"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은이 김정남을 암살하고 장성택을 숙청한 것 역시, 북한 내 친중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극약처방이라는 시각도 있다.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는 말처럼 북한 입장에서 중국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오히려 미국과 친선을 맺는 것이 체제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중 갈등으로 '한미일 vs 북중러' 신냉전 구도가 본격화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과거 냉전시대 북한은 중국과 소련(현 러시아) 사이에 위치해 이익을 취해왔다. 한반도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대립의 장이 됐다. 대신 남한은 미국의 막대한 지원을 받았고, 북한은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얻을 수 있었다.
만약 신냉전구도가 고착화된다면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를 대신해 미국 및 남측과 대립각을 세우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미 바이든 행정부가 인권문제를 앞세워 북한과 중국을 싸잡아 압박한다면 그 가능성은 더더욱 높아진다.
4. 한국정부의 전략은?
두 가지 선택지가 있을 것 같다.
우선 '한미일 vs 북중러' 구도에 소극적으로 편승하는 것이다. 이 경우 북한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고 한반도 비핵화 역시 어려워지겠지만, 남북은 적당한 긴장관계로 현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무난한 한중관계도 기대된다.
다른 선택은 미국의 반중국 전략에 적극 호응하고 북한마저 미국 측으로 끌어오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 중국의 강력한 반발이 불가피하다. 중국이 맡아온 대북 경제지원도 우리가 부담할 위험성도 있다.
여기에 문제를 더더욱 복잡하게 하는 것은 북한이 중국만큼 우리의 영향력을 경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조선중앙통신의 지난 2월25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전날 노동당 중앙군사위 제8기1차 확대회의에서 '신세대 군 간부에 대한 통제 강화 및 군내 규율 확립'을 강조했다고 한다. 이는 한류(韓流)에 물든 신세대 지휘관들에 대한 사상통제 강화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정부가 추진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은 남북간 경제적 이익과 긴장완화라는 성과를 가져왔다. 동시에 북한에 '자본주의 요소'를 학습시켰고, 이는 '장마당(사설시장)'과 '돈주(신흥 자본가)' 활성화로 이어졌다.
북한 입장에서는 남측과의 교류 혹은 남측 문화 유입이 자신들의 '수령영도체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할 수 있는 부분이다.
결국 북미 관계개선과 별도로 남북의 적당한 거리두기는 불가피하다. 만약 북미관계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남북관계는 악화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한반도 평화정착 및 비핵화'라는 대승적인 목표를 위해 우리가 감내해야할 부분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