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차세대 레게 뮤지션’ 브라운티거, 디핀칼즈와의 도약
‘스컬·쿤타’가 주목한 신예…2020년 본격 활동 돌입
“책임감 대신 음악 자체에 집중하고 싶어요”
입력 : 2020-04-09 06:00:00 수정 : 2020-04-09 06:00:00
[뉴스토마토 유지훈 기자] 레게는 꾸준히 대한민국 리스너의 마음을 두드렸다. ‘호랑나비김흥국, ‘날개 잃은 천사룰라, ‘수필과 자동차’ 015B, ‘여름아 부탁해인디고, ‘핑계김건모 등이 그랬다. 모두 나름 뜨거운 인기를 얻었지만, 노래의 가창자들은 레게 뮤지션이라는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대중이 그 장르를 사랑하지 않으니 그랬을 수도, 그 뮤지션 스스로도 레게 음악을 사랑하지 않으니 그랬을 수도 있다.
 
이렇듯 한국과는 가깝고도 먼 레게지만 의미 있는 계보도 만들어졌다. 한국 레게 1세대라고 불리는 밴드 닥터레게를 비롯해, 스토니스컹크 이후 하하와 레게 강 같은 평화(레강평)를 결성한 스컬, 집시의 탬버린으로 시작해 쿤타 앤 뉴올리언스(Koonta & Nuoliunce), 그리고 최근 루드 페이퍼(Rude Paper)로 활동중인 쿤타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앞서 언급했던 가수들과는 달리 레게 뮤지션라는 아이덴티티를 꾸준히 밀고 나갔고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브라운티거(Brown Tigger)는 닥터레게, 스컬, 쿤타에 이어 등장한 한국 레게신의 새로운 아이콘이다. 힙합 음악에 매료됐던 그는 장르를 넓혀 가다가 레게를 자연스럽게 접했고 이후 레게 뮤지션으로 전향했다. 쿤타, 스컬은 브라운티거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지원사격에 나서기도 했다. ‘Lonesome’ ‘Sorry’ ‘Tiny Room’ ‘APPETIZER’과 같은 싱글을 연달아 선보이며 실력을 갈고 닦은 브라운티거는 2019년에는 첫 정규 ‘Vacay’를 발매하며 자신만의 음악성을 각인시키기도 했다. 새로운 레게 스타의 탄생이었다.
 
2020년의 브라운티거는 루키가 아닌 어엿한 레게 뮤지션으로 발돋움 하기 위한 준비에 분주하다. 디핀칼즈 레코즈를 설립했고 ‘2020 월간 브라운프로젝트를 가동했다. 1월호 ‘Imagine the day’를 시작으로 어디까지 가야 어른일까’, ‘Cookin’’까지 계획했던 대로 꾸준히 작업물을 내오고 있다. 여기에 함께 음악을 해왔던 조광일도 디핀칼즈 레코즈에 합류해 신곡 곡예사를 발매했다. 앞으로도 브라운티거는 디핀칼즈 레코즈의 수장이자 차세대 레게 뮤지션으로서 묵묵히 앞으로 나아간다.
 
브라운티거.
 
뮤지션 브라운티거의 시작이 궁금하다.
고등학교 자퇴 후 공부해서 원하던 대학에 들어갔어요. 힙합 동아리가 있었고, 그 곳에 들어가서 아마추어로 가사를 끄적이고 랩을 했죠. 그런데 얼마 버티진 못했어요. MT에 갔는데 동아리 부장이 힙합은 머리를 밀어야 해. 너도 밀어라고 하는 거에요(웃음). 그런 게 힙합이면 안 해야겠다 싶어서 나왔어요. 이후 아마추어와 언더그라운드 그 사이 어딘가에서 꾸준히 작업했어요. 그러다가 군대에 갔고 휴가 나와서도 간간히 작업했어요. 그때부터 진지하게 음악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레게와의 첫 만남은 어떻게 이뤄졌나.
군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 레게를 처음으로 만났어요. 부대에 갇혀있으니까 음악으로 스스로를 표출했었어요. 휴가 때마다요. 레게 비트를 들었는데 그게 마음에 들어서 작업해 올렸죠. 그런데 쿤타 형한테 페이스북 메시지로 연락이 온 거에요. 전역 하자마자 바로 만났고, 함께 작업하며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음악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요.”
 
쿤타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쿤타 형 아래서 계속 배우다 보니 모든 걸 흡수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어요. 처음에는 나도 쿤타 형처럼 되고 싶다였는 데 그게 심해지다 보니 제 색을 잃어갔어요. ‘카피 캣이 된 거죠.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일본으로 떠났어요. 금전적으로 힘들긴 했지만 거기서 버스킹을 하는 교포 친구를 만났어요. 어쩌다 보니 일본에서, 오사카 레게 신 언더그라운드에서 데뷔했죠(웃음). 이후 한국에 돌아와 활동하다 보니 입소문을 타게 됐던 것 같아요. 나름 인지도가 있는 레게 뮤지션이 됐어요.”
 
쿤타 카피캣이 아닌 브라운티거는 어떤 뮤지션이라고 소개하고 싶나
쿤타 형은 느리고, 본토 느낌이 강해요. 저는 스킬풀하고 빠르게, 더 위트 있는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어요. 그게 해답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요즘은 강박적으로 쿤타 형이랑은 다르게 해야 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작업을 하면서 레게 뮤지션 브라운티거를 찾아가고 있어요.”
 
쇼미더머니6’에도 출연했었다. 어떤 경험이었나.
방송이 처음이었고, 그 시스템을 잘 모르다 보니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3차까지 올라갔는데, 트루디와 경연을 벌이게 됐어요. 마음이 잘 맞다고 생각했던 친구와 방송 때문에 경쟁구도가 만들어진다는 게 힘들었어요. 여러 힘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왔고 원했던 결과를 얻지는 못해서 아쉬워요.”
 
브라운티거
 
정규 앨범 이전에 많은 싱글을 발매했다. 어떤 계획을 가지고 했던 것인가.
일종의 테스트였어요. 당시 저는 장비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장인은 장비를 탓하지 않잖아요. 그 테스트들이 끝나고 난 후에 장비를 샀죠(웃음). 그래도 큰 도움이 됐던 거 같아요. 그 노래들을 들은 스컬 형한테 연락이 왔으니까요.”
 
스컬과의 만남, 그리고 작업기가 궁금하다.
당시 쉬고 있었는데 누군가에게 DM이 왔어요. 원래 잘 그런걸 보지 않는데 느낌이 이상한 거에요. 보니 스컬 형이었어요. 형이 제게 피쳐링을 제안했고, ‘당연하죠라고 말씀 드린 후 열심히 작업했어요. 이후에 어떤 자리가 있으면 저를 자주 초대해주셨어요. 정말 감사한 분이에요.”
 
언더그라운드에서 하기 힘들다는 정규앨범도 발매했다.
브라운티거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였어요. 맨 처음 작업할 때는 피쳐링이 정말 많았는데 한번 다 엎었어요. 제 음악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우여곡절 끝에 2019년 여름에 완성해서 발매하게 됐어요. 반응이 엄청 뜨겁진 않았는데, 그래도 뮤직비디오를 찍었고 이후에 스케줄도 많이 들어왔어요. 덕분에 좀 더 성장할 수 있었어요.”
 
정규앨범을 통해 만들어진 브라운티거의 정체성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나.
그게 웃긴 게 지금은 또 달라요(웃음). 레게를 어렵지 않게 팝으로 녹여내는 뮤지션, 정통 레게를 하는 뮤지션 사이에서 아직도 고민하고 있어요. 가장 와 닿았던 피드백은 넌 케이팝스타가 아니야. 음악을 해였어요. 그런 상황에서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를 만나게 됐고, ‘월간 브라운을 시작하게 됐어요.”
 
월간 브라운에 대한 간략한 소개, 그리고 지금까지 프로젝트를 이어나간 소감은?
단순히 말하면 한 달에 하나씩 브라운티거의 음악을 내는 거에요. 어떤 테마를 이어나간다기 보다는 매달 제가 느낀 것들을 표현해요. 1월호는 참 잘 됐어요. 스스로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2월호는 비트와 아트워크가 동시에 왔는데 둘이 정말 딱 맞아 떨어지는 거에요. 저도 가사가 편하게 써졌죠. 두 번째 벌스에서 다른 목소리가 필요했고 감사하게 우탄 형이 작업해줬어요. 피드백이 정말 좋았어요. 1년 동안 활동하며 가장 만족스러운 결과물이에요. 3월호부터는 생각보다 이걸 계속 이어가는 게 어렵다는 걸 깨닫고 있어요.”
 
브라운티거
 
디핀칼즈 레코즈를 설립했다. 어떤 계획을 가지고 만들게 됐나.
“‘불만 많은 촌놈들이라는 뜻이에요. 예전부터 같이 지내며 작업하고 그랬던 친구들이 있어요. 음악을 하다 보면 여러 비즈니스 때문에 머리가 아픈데 이럴 거면 우리가 회사를 만들자했어요. 우리 다 불만이 많았고, 촌놈들이었죠(웃음). 조광일이라는 친구가 정말 랩을 타이트하게 잘 해요.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정통힙합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우선은 이 친구와 둘이 활동할 생각이에요.”
 
함께 작업하고 싶은 뮤지션이 있다면?
기리보이 형이요. 제가 팔로우를 하고 있었는데 직접 몇 번 만나고 저를 맞팔 해주셨어요. 조금 친해졌고 가끔씩 통화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스디스와도 작업해보고 싶어요. 기리보이 형 콘서트에 놀러 갔는 데 거기서 랩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두 사람과 작업해보는 게 올해 목표 가운데 하나에요.”
 
레게 뮤지션이 살아남기 힘든 시장이다. 차세대 레게 뮤지션으로 불리는 만큼 나름의 부담도 있을 것 같다.
쿤타 형을 보면서 줄곧 이 형처럼 멋진 뮤지션이 되고 싶다고 했었어요. 지금은 그냥 내가 멋진 뮤지션이 되고 싶다에요. 어떤 책임감이나 중압감은 없어요. ‘레게 신을 부흥시키자는 슬로건을 아무리 걸어도 사람들이 듣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는 거에요. 대중음악의 흐름을 바꾼다기보다는 음악 그 자체를 즐기고 싶어요.”
 
앞으로 어떤 뮤지션으로 기억되고 싶나
방금 말씀 드린 것처럼 멋진 뮤지션이요. 어떻게 해석하셔도 좋으니 그냥 긍정적인 마음으로 제 음악을 한번 들어봐 주셨으면 해요.”
 
유지훈 기자 free_fro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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