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양기호 "한일갈등, 정치적 타결 통한 해법도출이 효과적"
'강제노동 피해' 국제사법재판소 회부·중재위 설치 모두 전망 회의적
"정부, 청구권자금 수혜기업과 모금금액·배분방식 등 논의해야"
입력 : 2019-11-05 06:00:00 수정 : 2019-11-05 06:00:00
[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노동 피해자 배상판결을 빌미로 일본이 대한국 수출규제 등 보복조치를 단행하면서 경색된 한일 관계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양국 모두 대화 필요성에는 공감하나 일본은 한국에 '국제법 준수'를, 한국은 일본에 '수출규제 철회'를 각각 촉구하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아직 한일 간 주장은 크게 엇갈리나, 정치적 타결을 통한 해법도출이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양국이 자유무역을 통해 상호번영·성장을 향유해온 점에 기초해 문제해결에 나서야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한일협력의 선순환구조 기틀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제언도 내놨다.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한일관계의 위기와 해법 - 대안은 있는가’ 국제학술회의에서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왼쪽 세 번째)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한일 인적·물적교류 확대 별개로 갈등 이어져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한일 양국의 인적·물적 교류는 빠른 속도로 증가해왔다. 양국의 인적교류 규모는 1965년 2만명에서 2018년 1049만명으로 500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일본을 찾은 한국인 수는 754만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으며 방한 일본인 수는 295만명으로 전년 대비 27% 급증했다. 양국 간 무역액도 1965년 기준 2억달러에서 지난해 850억달러로 420배 가량 늘었다. 영국과 프랑스 간 무역액을 상회한다.
 
이같은 수치상의 결과가 무색하게 한일 양국의 대립·갈등은 최근 들어 심화하는 중이다. 그 중심에는 '일제강점기 강제노동 피해자 배상문제'가 있다.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을 포함한 모든 보상이 최종적으로 끝났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대법원은 대일청구권 협상 당시 우리 측이 일본에 총 12억2000만달러를 요구했지만 결국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로 타결된 점을 거론하고 "요구액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돈을 받은 상황에서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이 청구권협정 적용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에 더해 우리 정부는 대법원 판결의 본질이 '민사소송'이며, 판결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으로부터 승소판결을 받은 원고 32명 이후로 비슷한 소송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청구권협정 당시 개인보상에 대해서는 '한국 측이 알아서 정리한다'는 교섭내용이 있었다"며 "이후 돈이 들어오고 나서 (한국 정부가) 관련 법률을 만들어서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공공투자에 전적으로 사용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1971년 '대일민간청구권 신고에 관한 법률', 1974년 '대일민간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이 각각 공포됐고 이후에도 피해자들의 보상요구가 이어지자 2008·2010년 관련 법률이 만들어졌으나, 아직까지 보상금이나 위로금을 받지 못한 피해자 수가 많다는 주장도 나온다.
 
어떻게든 일본 측과 논의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상황은 간단치 않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 구상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 양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판결이 나오는데) 최소 3년 이상 걸릴 수 있다"며 "그 사이에 대부분 90대에 달한 피해자들이 상당수 사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2월 기준 강제노동 피해자 수가 5200여명으로 집계되는 가운데 3년 후 판결이 나온다 해도 생존자 수가 수백명 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일 양국이 져야 할 위험부담도 크다. 양 교수는 "자료와 공문을 영문으로 번역하고 저명한 국제법 변호사를 고용하는 등의 과정에서 한일 양국 모두 수백억원 이상의 재정부담이 발생할 것"이라며 "ICJ에서 패소할 경우 치명적인 타격을 입기에 자신들의 역량을 총동원할 것이고 신경전도 증폭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일 외교당국간의 불신이 높아지고 국민들 사이의 경쟁·갈등이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양 교수는 일본 측이 요구하는,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른 중재위원회 설치방안도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양국은 청구권협정 해석상의 분쟁이 있을 경우 우선 외교상 경로를 통해 해결하며 이후에는 양국 합의 하에 중재위원을 임명하고 중재 대상과 시기, 방법 등을 정해야 한다. 이에 대해 양 교수는 "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양국은 1910년 한일 강제병합이 불법인지 합법인지 여부에 대해 합의를 보지 못했다"며 "중재위가 개시되더라도 한일 양국은 강제병합의 불법성 여부를 둘러싸고 상호 의견차이를 해소하지 못해 결렬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 사이 원고단은 대법원 판결에 근거해 일본제철(올해 4월1일 신일철주금에서 이름 변경)의 한국 내 자산 압류절차에 들어갔으며 매각을 통한 현금화 절차를 밟고 있다. 올해 내에 자산 현금화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양 교수는 "일본 정부가 원고단의 자산 매각·처분 시 어떤 식으로든지 경제보복을 하겠다는 말이 작년 말부터 있었다"며 "올해 초부터는 본격 검토도 했다"고 걱정했다. 일본 정부의 '2차 경제보복'이 있을 경우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할 전망이다.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한일관계의 위기와 해법 - 대안은 있는가’ 국제학술회의 시작 전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왼쪽 세 번째)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1+1안' 기반해 구체방안 논의해야"
 
한일 관계 해법을 놓고 양 교수는 “사법부의 민사소송 과정과 판결을 존중하고, 한일 양자 간 문제로 한정해 해법을 도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양국 간 정치적 타결을 통한 해법도출 필요성을 밝힌 것으로, 한국 정부가 지난 6월19일 제안했던 '1+1안(한일 양국 기업이 자발적으로 자금을 출연해 피해자들에게 배상)'에 기반해, 구체적인 방안을 더해가는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견해다.
 
양 교수는 "한국 측은 포스코를 비롯한 16개 청구권자금 수혜기업과 대화를 개시해 전체적인 모금금액과 배분방식, 재단 운영체제 등을 논의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원고단인 피해자·지원단체는 물론 전문가들과 공식·비공식 회의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제했다. 또한 "일단 한국기업이 피해자들에게 대법원 승고판결 확정금액을 지급하고 나서 일본기업들의 자산매각·현금화를 예방할 수 있다면, 추후 일본기업도 당연히 기금마련에 참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일 양국 기업이 주도하는 형태로 진행하되 한국 정부가 간접 지원하는 방안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 정부와의 대화도 수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양 교수는 "한일 양국은 동아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를 견인하는 중요한 통상·무역파트너이고 상호번영과 경제성장 측면에서 수평적인 단계에 이른 모범사례로 꼽힌다"며 "양국이 상호 협력해 난관을 돌파하려는 진정성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반도 비핵화와 한일협력이라는 선순환구조를 만들어내 문재인정부 임기 후반 한일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아직 한일 간 주장은 크게 엇갈리나, 정치적 타결을 통한 해법도출이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사진/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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