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리뷰)'신문기자',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보수적인 일본 문화계에 던져진 작은 희망의 돌…과연 미래는 있는가
강렬한 톤, 탄탄한 연기력, 세련된 연출…2019년 일본의 그림자 그대로 비춰
입력 : 2019-10-13 08:00:00 수정 : 2019-10-13 08:00:00
[뉴스토마토 김희경 기자]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을 강하게 비판한 일본 영화가 탄생했다. 프로듀서는 "제작 내내 현정권과 문화계의 유착관계를 실감했다"며 고개를 내저을 만큼, 동조 압력이 심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끝내 개봉했다. 정치에 무지했던 2, 30대 일본인들에게 큰 공감을 샀고, 동시기에 개봉한 '알라딘', '토이스토리4', '스파이더맨:파프롬홈' 사이에서 박스오피스 역주행 기록을 세운 유일한 영화였다. 개봉일 3개월이 지난 현 시점까지도 일본 극장가에서 상영중인 '신문기자'. 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이토록 일본 대중들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걸까.
 
영화 '신문기자'(감독 후지이 미치히토)는 일본 매체 '도쿄신문'의 모치즈키 이소고 기자의 동명의 책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일본 정부 권력의 거대한 힘 앞에서 기자 본연의 자세를 잃지 않고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특히 현재 일본에서 절대권력자라고 할 수 있는 아베 정권과의 대립을 담았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다.
 
영화 '신문기자' 스틸. 사진/㈜팝엔터테인먼트
 
'신문기자'의 메가폰을 잡은 후지이 미치히토는 1986년생으로 만 33세다. 그 또한 얼마 전 까지만 하더라도 일본 정치는 통 관심이 없는, 평범한 일본 청년층이었다. 그러다 지난 2017년 한 기자의 대담한 목소리를 우연히 듣게 됐고, 그의 인생은 180도 바뀌게 됐다. 그 기자는 10분밖에 질문이 허용되지 않는 정례 회의에서 아베 정권의 2인자이자 대변인 역을 하는 관방 장관에게 무려 40분 동안 23회에 걸쳐 '아베 정권 사학 스캔들'과 '이토 시오리 미투 운동'에 대해 거침없는 질문을 퍼부었다. 그 주인공이 바로 모치즈키 이소토였다.
 
모치즈키 이소토는 43세의 여성 기자다. 모치즈키는 2명의 아이를 낳은 뒤에도 기자의 꿈을 놓지 않고 복귀, 날카롭고 거침없는 질문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그는 "정부는 항상 사람들에게 정보를 숨기려 든다. 아무도 묻지 않는다면 내가 물어볼 수밖에 없다"고 용기있게 발언하기도 했다.
 
영화는 모치즈키의 이런 용감한 목소리를 주제로 담았다. 내각정보실 관료 스기하라(마츠자카 토리 분)가 정부와 고위 관료를 보호하기 위해 여론 조작과 가짜 뉴스 유포를 하는 자신의 업무에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여기에 자신이 존경하는 선배가 갑작스럽게 자살하게 되고, 이후 젊은 여성 기자 요시오카(심은경 분)를 만나 진실과 국가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영화 '신문기자' 스틸. 사진/㈜팝엔터테인먼트
 
스기하라의 역할은 현재 일본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층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정부의 부조리함에 침묵하고, 진실보다는 자극적인 정보에 눈을 돌리며, 평화로운 자신의 가정을 돌아보며 '나라가 어떻게 되더라도 지금 우리 가정만 행복하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고위 관료의 명령에 말없이 순종하는 태도는 일본 사회의 수직적 구조의 부조리함을 꼬집는다.
 
반면, 요시오카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캐릭터다. 작은 주간지에서 근무하는 여성 기자지만, 과거 자신의 아버지처럼 참 된 언론인이 되기 위해 미국에서 돌아와 일본 기자로 살기를 택한다. "왜 굳이 이렇게 힘든 길을 택하냐"는 주변의 반응에도 요시오카는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라고 간단하게 답한다.
 
영화 '신문기자' 스틸. 사진/㈜팝엔터테인먼트
 
이 영화의 비중 있게 다룬 부분은 '가짜 뉴스'와 '여론 몰이'다. 내각정보부는 "국가를 위한 일"이라는 미명 아래 수십개의 가짜 뉴스를 조직적으로 퍼트린다. 이 부서의 업무는 종일 수십. 수백개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대중들의 시각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이다.
 
일본의 대표적 '미투 운동'으로 손꼽히는 이토 시오리 사건을 다룰 때도 마찬가지다. 이토는 언론사 인턴으로 일하던 도중 간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곧바로 내각부는 '이토가 꽃뱀이다', '성폭행이 아닌 서로간의 감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는 말은 물론, 당치도 않은 가짜 정보를 SNS에 한 시간에 수십 개씩 인터넷에 뿌리기 시작한다.
 
심지어는 이토의 기자간담회에 방문했던 젊은 남성 기자들도 "그 여자의 가슴을 봤냐", "그런 몸매로 들이대면 누가 안 넘어가겠냐"며 키득거린다. 진실을 말해야 하는 언론마저 아베 정권의 뜻대로 '순한 양'이 된 것이다.
 
영화 '신문기자' 스틸. 사진/㈜팝엔터테인먼트
 
양. '신문기자'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키워드다. 요시오카와 스기하라는 의문의 제보자로부터 눈이 가려진 양 그림을 본 뒤 더욱 행동을 확고히 한다. 눈이 가려진 양, 이것은 일본 정부로부터 볼 권리를 빼앗긴 순진한 국민들의 모습을 희화화 한 것이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하나의 실마리를 잡으면, 정부는 교묘하게 이를 털어낼 방어 카드를 내보인다. 이런 과정이 수차례 반복되지만, 요시오카와 스기하라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살아가는 젊은 청년들이 가져야 될 애티튜드를 보여주는 모습이다.
 
영화 '신문기자' 스틸. 사진/㈜팝엔터테인먼트
 
심은경은 '신문기자'에서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에서 태어난, 미국 국적을 가진 일본계 미국인 요시오카로 나온다. 원작의 요시오카 설정과는 다소 달라진 부분이다. 그 이유 또한 현재 일본 정부의 압박 때문이다. '신문기자' 스크립트는 미야자키 아오이, 미츠시마 히카리 등 많은 일본 여배우들에게 제안됐지만 반정부 이미지로 낙인찍힐까 두려워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이 당시 심은경은 일본 진출을 위해 일본어를 준비 중이었고, 그는 이 대본을 보자마자 흥미를 느껴 출연을 확정지었다고 전해진다.
 
심은경의 일본어 실력은 예상보다 훨씬 수준급이었다. 물론 긴 대사를 치기보다는 짧은 대사들이 많았지만 발음은 자연스러웠고, 대사 연기보다 훨씬 어려운 내면의 갈등이나 눈물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해내며 요시오카의 캐릭터성을 확고하게 했다. 수수한 얼굴 속에 드러나는 강인한 눈빛을 보고 있으면 '어떤 배우가 심은경을 대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영화 '신문기자' 스틸. 사진/㈜팝엔터테인먼트
 
스기하라 역을 맡은 마츠자카 토리도 완벽한 연기를 선보였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2세를 기다리는 평범한 남편. 정부의 여론 조작을 알고 있지만, 아내에게마저 진실을 숨기는 모습은 현재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일본 대중을 담백하게 담아냈다. 정부의 실체에 두려움과 압박감을 느끼는 모습을 섬세한 연출로 담아냈다. 특히 거실에 앉아 쏟아지는 가짜 SNS 계정들의 글을 바라보는 장면은 독특한 기법으로 묘사돼 신선함을 자아냈다.
 
'신문기자'에서는 관객들에게 이런 대사를 던진다. "일본의 민주주의는 형태만 있으면 충분해". 영화는 과연 이 말이 일본의 미래에 필요한 태도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할 시간을 주는 작품이다. 개봉은 오는 17일.

영화 '신문기자' 포스터. 사진/㈜팝엔터테인먼트
 
김희경 기자 gmlrud1515@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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