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타지옥' 이중옥 "여성분들 보시기 불편할까 걱정"
"웹툰보다 더욱 악질적인 캐릭터…연기적으로 너무나 힘들었던 배역"
"범죄자? 이젠 내가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다음엔 못된 상사하고파"
"연극에서 매체로 옮겨올 때 아내 도움 컸다…결혼이 복이라고 생각"
입력 : 2019-10-11 06:00:00 수정 : 2019-10-11 06:00:00
[뉴스토마토 김희경 기자] 이중옥이라는 배우를 색으로 따진다면 채도 짙은 감색에 가까울 것이다. 목소리는 낮고 침착했고, 표정 또한 잘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 사람을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목소리는 조용조용했지만 귀를 기울일 만큼 힘이 있었고, 미묘한 표정에서는 평온함이 느껴졌다. 이중옥에게 연기가 그러했다. 이제 삶에서 뗄 레야 뗄 수 없는, 감색의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얼굴만 언뜻 보면 우리에게 낯선 존재일 수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에겐 다양한 수식어가 있다. '손 더 게스트', '왓쳐' 등 OCN의 장르물에 다수 등장해 '옥씨엔의 아들'이라는 별명도 붙었고, '박하사탕', '밀양', '버닝'의 메가폰을 잡은 이창동 감독의 조카이기도 하다. 2년 전 까지만 해도 대학로 연극가를 전전하던 그에게 현재는 너무나도 큰 변화이자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그만큼 그는 인터뷰 내내 "제가 이렇게 하는 게 맞나요?"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이중옥은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OCN 주말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 종영 기념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극중 에덴고시원 313호 홍남복 역을 맡았다. 성범죄자 전과를 갖고 있어 전자발찌를 차고 있으며, 방 안에는 언제나 음란물이 가득하고 여성에 대한 욕망을 참지 못하며, 심지어 장기매매까지 하는 전형적인 범죄자의 모습이었다.
 
그 또한 홍남복의 첫인상이 썩 좋지는 않았다. "범죄자의 완성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실제로 드라마로 재현된 홍남복은 웹툰보다 상당히 더 입체적으로 구성됐다. 나쁘게 말하면, 더욱 악질적인 요소가 가미됐다는 것이다.
 
"드라마 속 홍남복은 웹툰보다 더 나쁜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실제로 드라마에서 편집된 장면에서는 홍남복이 장기밀매를 하는 사람과 거래를 하는 장면까지 나왔어요. 하지만 너무 방송에 내보내기 잔혹하다는 이유로 편집이 됐죠. 이런 식으로 방대하고 입체적으로 캐릭터를 만들어 내다보니 '사람들이 (홍남복의 장면을)다 볼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조금 덜했으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지만 결론적으로는 잘 된 거 같아요."
 
이중옥. 사진/지킴엔터테인먼트
 
이중옥이 가장 크게 걱정한 것은 바로 여성 시청자들이었다. 성범죄, 연쇄살인 등 약자를 타겟으로 삼는 범죄자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연기하다 보니, 논란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 그는 연기를 위해 캐릭터를 연구하기는 했지만, 절대로 홍남복에게 동조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타인은 지옥이다' 촬영 종료 이후 약간의 무력감과 우울증 증세가 있었지만, 일주일 만에 극복할 수 있었다고.
 
"제가 연기하려고 연기할 때 가장 걱정한 건 윤리적 문제였어요. 사회적 분위기도 그렇고, 남녀간의 이슈도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죠. 이와 관련해서 감독님과도 정말 많은 상의를 해봤어요. 당연히 부담감을 안고 출발했고, (욕 먹을)일도 감수하고 연기를 했습니다. 전부 올인한 결과를 보니 제가 상상한 만큼 만들어진 거 같아서 만족스럽습니다."
 
"홍남복이라는 캐릭터가 어떤 삶을 살아 왔을지 상상을 해봤어요. 어떻게 태어났길래 지금 나이에 고시원에 왔는지 말이죠. 과거에는 공부를 상당히 잘 했을 거 같아요. 그렇지만 외모적으로 호감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좋지 않은 편견을 겪어봤을 수도 있고, 이 과정에서 여성편력이 생겨난 게 아닐까? 라는 상상을 해봤어요. 자존감이 낮아지니 성격적으로도 많이 삐뚤어지고, 여성들에게 호감도 받지 못했을 거 같더라고요."
 
앞서 이중옥이 말했던 것처럼 드라마 속 홍남복은 웹툰보다 훨씬 더 입체적으로 구현됐다. 극중 중국어를 쓰는 장면 또한 웹툰에 없었던 구성 중 하나였다. 연변이나 조선족을 유사하게끔 유도해 홍남복의 이미지를 훨씬 더 악랄하게 표현하려고 했다고. 덕분에 이종욱은 개인 중국어 선생님에게 1대1 과외를 받을 정도로 언어 공부에 힘 썼다고 한다. 대본을 받으면 선생님에게 내용을 보내고, 녹음본을 수시로 보내며 확인을 했을 정도였다.
 
홍남복은 캐릭터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매우 뚜렷하지만, 연기하기에는 매우 좋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대사가 없다'는 것. 이중옥은 자신의 대본에는 대사보다는 행동이 적혀 있는 것들이 많아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홍남복과 윤종우(임시완 분)가 고시원 복도에서 마주치는 장면들이 몇 번 있었어요. 그런데 대본에는 그 장면들이 전부 '홍남복이 윤종우를 응시한다. 계속해서 응시한다' 이런 식으로 적혀 있었어요. 답답했죠. '어떻게 봐야 불편하게 만들 수 있을까', '시청자들에게 압박감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눈빛을 바꿔보고, 소품용 칼도 쥐어 보고 그랬던 거 같아요."
 
이중옥. 사진/지킴엔터테인먼트
 
연기에 대해서는 이렇게 철저하지만, 정작 이중옥은 자신의 연기를 모니터링하는 것에 있어서는 부끄러워했다. '타인은 지옥이다' 중 역대급 연기를 선보인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그는 "개인적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이 보여서 낯부끄럽다. 미쳐버릴 거 같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이 부족했는지 물어보자 "대부분이 그렇다. 보다가 '표정이 왜 저러지' 싶은 것들이 있다"고 스스로를 책망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중옥은 이렇게 홍남복과 싱크로율을 높였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걱정 아닌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유독 장르물에서 빛을 발했던 그의 연기력 때문에, 혹여 그가 '악인 전문 배우'가 되는 것에 있어 피로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이중옥은 "그런 걱정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며 입을 열었다.
 
"개인적으로 이정은 배우님의 조언이 정말 저에게 큰 힘이 됐어요. 정말 연기력이나 애티튜드가 선배다운 선배였다고나 할까요. 촬영 내내 정말 의지를 많이 했던 거 같습니다. 언젠가 한 번 '선배님, 제가 악역을 너무 많이 하는데 이런 이미지 소모만 되면 어떡하죠?'라는 질문을 드렸어요. 그러니까 이정은 배우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나도 아줌마, 엄마 역만 10년 했어. 그런데 이러면 어때? 배우는 그 역이 들어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야. 같은 역을 하면 잠깐 쉬고, 그러다 보면 뭐가 들어오겠지'라고 하시더라고요. 본인의 경험을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더 할 나위 없이 위로가 됐고, 심리적으로도 많이 편안해졌어요."
 
"물론 평생 악역만 해보고 싶은 건 아니에요. 지금은 '악역이면 어때?'라는 생각이고, 지금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이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차기작도 악역이 들어온다면, 이왕이면 대사도 좀 많고 의상도 멀끔했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촬영 세트장이 지하여서 한여름에도 굉장히 추웠거든요. 게다가 저는 민소매를 입고 촬영했는데, 감기 안 걸려서 다행이었죠. 특히 마지막 회에서 제가 죽어서 밀실 앞에 누워있는 장면은 2시간 동안 촬영했는데, 누워있다가 입 돌아가는 줄 알았습니다. (웃음) 다음에는 못된 직장 상사 역을 해보고 싶어요. 멀끔하게 정장도 입고, 누군가를 악랄하게 괴롭힐 수 있는 직책도 가져보고요."
 
이중옥. 사진/지킴엔터테인먼트
 
이중옥의 연기는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극장을 전전하며 수많은 공연을 했다. 좁은 극단에서 사람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는 것에는 익숙했지만, 막상 더 넓은 물인 드라마나 영화로는 어떻게 발을 넣어야 할 지 몰랐던 것이다. 물론 그가 아예 TV에 얼굴을 보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2010년 즈음부터 KBS2 드라마 스페셜 '동일범', SBS '육룡이 나르샤' 등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얼굴만 비추고 사라지는 엑스트라에 불과했다.
 
그가 대중매체에서 입을 여는 연기를 하게 된 건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이다. 정말 우연치 않게 아내의 권유로 한 영화의 오디션을 보게 된 것. 그 오디션의 정체는 바로 영화 '마약왕'이었다. 당시에는 '마약왕'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오디션을 본 이중옥은 수천 대 일을 뚫고 역을 따냈고, 이를 토대로 이중옥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연극을 하는 동안에도 드라마나 영화로 진출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봤지만, 저도 그렇고 많은 분들이 그 방법을 잘 몰라요. 저도 와이프가 없었으면 그 오디션을 보지 못했을 거예요. 정말 아내와 결혼한 게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마약왕'을 통해 운이 좋게 다른 오디션을 보게 됐고, 그렇게 OCN '손 더 게스트', '와쳐'를 하다가 현재의 소속사와 계약도 하게 됐죠."
 
이중옥이 현재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은 2가지가 있다. 어떻게 하면 연극 배우들이 대중 매체로 수월하게 들어올 수 있는 지와, 자신의 연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후자의 경우는 적응 중이지만, 전자의 경우는 나로서도 답을 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안타깝다. 실제로 나에게 물어보는 경우도 있지만 답을 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피하게 된다"며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연극 배우들은 어떻게 해야 다른 매체로 옮겨갈 수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정보의 폭이 좁은 거 같아요.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 연극 배우들은 더 힘들어요. 역이 적으니 폭도 좁죠. 물론 기회가 온다고 해도 자신에게 역이 찾아온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그 과정을 겪고 있는 친구들이 정말 많아요. 제게도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어보는데, 제가 한 방법이 정답은 아아니거든요. 저도 운이 좋은 케이스이기 때문이죠. 제가 해결해줄 수 없어서 너무 답답하고 안타까워요."
 
이중옥. 사진/지킴엔터테인먼트
 
드라마에서 강렬한 역을 선보인 만큼, 밖을 다니다 보면 자신을 알아보는 팬들이 종종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섣불리 다가오지 못한다며 "저를 무서워하시는 것 같다"고 웃었다. 열연의 부작용으로 SNS로 욕까지 먹어봤다고.
 
"사람들이 저를 보고 '홍남복이다'라고 하기 보다는 '313호다'라고 하는 분들이 더 많은 거 같아요. 젊은 분들이 더 많이 알아보시는 걸 보면 확실히 ‘드라마가 젊은 세대들에게 많이 보여졌구나’라고 짐작만 해요. 그런데 역이 그래서 그런지, 쭈뼛쭈뼛 다가오시더라고요. 조금 더 편하게 오셔도 되는데. (웃음) 그래도 그건 양반입니다. 얼마 전에는 SNS DM으로 어떤 분에게 'X나 싫어'라는 욕까지 받아봤어요. 그만큼 연기를 잘 했다는 뜻이겠죠? 칭찬으로 생각하고 넘겼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중옥은 '타인은 지옥이다'를 통해 또 다른 사회를 배우게 됐다고 털어놨다. 고시원의 칸막이는 서로의 숨소리도 들려줄 만큼 얇지만, 철저하게 소통이 단절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드라마를 보신 분들의 사회는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랄 뿐이고, '타인이 천국'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작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중옥. 사진/지킴엔터테인먼트
 
김희경 기자 gmlrud1515@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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