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저도 개방과 탈권위
입력 : 2019-08-06 06:00:00 수정 : 2019-08-06 06:00:00
프랑스 인권선언 제1조는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문구는 현실 속에서 허구인 경우가 많다. 인간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향유할 권리마저 차등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자연경관은 어쩔 수 없다. 국가안보상 대중의 출입을 통제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도는 어떠한가. 경남 거제시 장목면 유호리에 위치한 일명 ‘돼지섬’ 저도는 일제 강점기부터 군 기지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때는 시민들도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다. 저도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섬이 된 것은 유신시대 들어서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저도를 청해대로 공식 지정하고 대통령 가족만의 전유물로 삼았다. 이를 부당하게 여겼던 김영삼 대통령은 거제시에 반환했다. 역사는 진보와 퇴보를 반복한다는 말이 맞는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이를 번복하고 대통령 별장으로 다시 환원했고, 대통령이 사용하지 않는 기간은 군 장병과 가족들의 하계 휴양지로 삼았다. 저도를 둘러싼 평등권의 희비는 이렇게 엇갈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저도 반환 및 개방’을 공식화했고 지난달 30일 저도를 찾아 이 약속을 이행할 것을 천명했다. 이에 따라 저도는 오는 9월부터 원하면 누구나 들어가 즐길 수 있는 곳이 됐다. 단지 1년간은 주 5일 오전 10시~오후 5시까지 시범 개방된다. 하루 2번 여객선이 운행되고 입도 인원도 하루 600명으로 제한한다.
 
우연의 일치던가. 프랑스에도 저도와 같은 운명을 지닌 곳이 있다. 브레강송 요새(fort de Bregancon)다. 브레강송은 프로방스 알프 코트 다쥐르(Provence-Alpes-Cote d'Azur)의 바르(Var) 지역 보르므 레 미모자(Bormes-les-Mimosas) 연안에 위치해 있다. 알프 코트 다쥐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니스 해변이다. 니스의 눈부신 태양 아래 늘어선 야자수와 비취색 바다, 이를 즐기러 찾아왔던 수많은 영국인들. 지금도 유명한 영국인 산책로(Promenade des Anglais)는 외국인의 니스 사랑을 증명한다.
 
그 바로 옆에 브레강송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브레강송이 니스보다 더 좋다. 지중해의 맑은 물, 반들반들한 바위섬 꼭대기에 세워진 12세기 성곽, 헬리콥터 비행장, 해수욕장.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의 피서지로 없는 게 없다.
 
이곳이 대통령 공식 휴양지가 된 것은 드골 대통령 시기다. 드골 대통령은 1964년 8월 25일 뚤롱(Toulon)에서 열린 프로방스 상륙 2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고 브레강송 요새에 묵었다. 그러나 장신의 드골 대통령에게 이 곳 침대는 너무 작았고, 밤새 모기에게 시달린 후 이곳을 멀리했다. 그는 대신 오트 마른(Haute-Marne) 지역 콜롱베 레 되 에글리즈(Colombey les Deux Eglises) 마을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곤 했다. 브레강송을 여름 휴가지로 전격 사용한 것은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이었다.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은 수상이나 그의 스키 코치를 이곳으로 불러 저녁을 먹곤 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이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수영을 즐기는 그의 부인 베르나데트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여기서 여름휴가를 여러 차례 보냈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달랐다. 브레강송을 싫어했고 랑드 지역 라슈(Latche) 마을에 있는 사저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곤 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역시 네그르(Negre)에 있는 그의 부인 별장을 선호했다. 2012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도 당선 직후 브레강송에서 휴가를 보냈지만 요새의 두꺼운 벽에 답답함을 느꼈다. 그가 해변으로 내려가면 정면에 있는 보르므 레 미모자 연안에 파파라치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발견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브레강송은 매우 좋다. 그러나 엘리제처럼 감금돼야 한다. 그러나 휴가를 떠나는 것은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기 위한 것이다”라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2013년 올랑드 대통령은 여름 휴가지를 베르사유의 랑테른(Lanterne)관저로 바꿨다. 그리고 그해 브레강송을 대중에게 개방할 것을 약속했다. 약 1년 뒤인 2014년 6월29일 이 약속은 지켜져 브레강송은 6월 말에서 9월 말까지 3개월 간 매일 오전 9시~오후 7시까지 누구나 방문할 수 있다. 단지 이 방문은 예약을 해야만 가능하다.
 
한국과 프랑스는 각각 이유야 다르지만 그동안 시민들이 접근하지 못했던 두 곳을 개방했다. 여행을 무척 좋아하는 필자는 저도와 브레강송을 여행 리스트에 첨가해 행복하다. 자연은 즐기는 자들의 것이라는 말이 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 군사기밀 지역이 아니라면 우리가 못 갈 이유가 없다. 대통령만의 별장이니 시민이 접근할 수 없다는 발상은 구시대의 전유물이다. 21세기 민주국가의 대통령은 시민의 한 사람에 불과하다. 5년간 국민의 권한을 양도 받은 대리인일 따름이다. 그러니 대통령이 즐기는 자연이라면 시민이 못 즐길 이유가 없다. 그런 차원에서 문대통령과 올랑드 대통령의 탈권위주의적 결정은 박수를 보내기에 아깝지 않다. 민주주의는 시대 변화에 빨리 대처해야 발전할 수 있다. 이번 정부는 이점을 명심해 시대변화에 부단히 부응하고 탈권위에 앞장설 수 있어야 한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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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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