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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정부, '이태원 참사' 진정성 있는 소통으로 신뢰 쌓아야
2023-01-20 06:00:00 2023-01-20 06:00:00
지난 해 10월 29일 서울 한복판 이태원에서 159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단일사고 인명피해로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최대라고 한다. 정부는 즉시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고, 사고의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필자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던 2014년 부장검사로서 국무조정실 법률자문관으로 파견 근무 중이었다. 세월호 참사를 수습하는 정부의 심장부에 있었다. 당시 실종자 가족들과 총리실 간에는 핫라인이 있었다. 핫라인은 필자였다. 정부와 실종자가족 간에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는 가족들의 지적에 따른 국무총리의 조치였다. 
 
2014년 4월 16일 정홍원 국무총리는 해외 순방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상태였다. 정 총리는 사태를 보고받고 귀국 비행기를 무안공항으로 돌려 진도 현장으로 직행했다. 총리는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상의가 벗겨지고 물세례를 받았다. 12일 만에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수많은 학생들과 국민들의 생명을 구하지 못하고 방송을 통해 죽음의 현장을 목도한 필자는 참담한 심경에 온몸을 떨었다. 공직자로서 국민의 생명을 지켜내지 못한 것에 무한한 책임감을 느꼈다. 
 
그 해 6월 27일 정 총리는 유임되자마자 첫 일정으로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을 방문했다. 필자도 총리와 함께 공군 2호기에 탑승하고 동행했다. 엄중한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수행을 자청했다. 필자는 진도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하던 변호사와 연락을 취했다. 가족들이 총리에게 요청할 내용을 선제적으로 파악했다. 요청이 쏟아져 나왔다.‘몸져누운 실종자 가족 대표를 병문안해 주면 좋겠다’. ‘진도체육관에서 가족들의 대정부 건의를 경청해 달라’. ‘총리가 가족들의 봉고 차량에 탑승하고 팽목항으로 이동해 주면 좋겠다’… 
 
총리는 가족들의 요청을 모두 수락했다. 필자는 대정부 건의를 미리 알려달라고 가족들에게 요청했다. 책임 있는 답변을 갖고 가겠다고 말했다. 불신의 골이 깊어서 그런지 처음에는 거절당했다. 그러나 무안공항에서 진도체육관으로 이동하던 중 A4용지 4장 분량의 건의사항이 필자에게 도착했다. 
 
총리는 진도군청에서 대책회의를 개최했다. 건의사항 중 80%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필자는 가족 측에 적극 수용의사를 통보했다. 그러자 2개월 만에 진도체육관에서 총리를 재회한 실종자 가족들은“우리 총리 왔다”고 눈물을 흘리며 포옹했다. 총리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필자도 먼발치에서 눈시울을 적셨다. 총리는 무릎을 꿇고 가족들의 말을 경청하고 위로했다. 총리는 가족들에게 국가개조와 안전혁신에 전력을 다하고, 마지막 한 명의 실종자까지 수색하겠다고 약속했다. 총리와 실종자 가족 사이에 두터운 신뢰의 끈이 생겼다. 
 
팽목항 방문을 끝낸 총리는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회의에 앞서 장·차관, 실장들이 가득한 자리에서 총리는 필자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더니 공직자로서 임무를 잘 수행했다는 취지로 칭찬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극찬이었고,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 후 필자는 핫라인으로서 장기간 체육관 생활로 건강이 나빠진 가족들을 위한 대책을 총리에게 보고했다. 고기 식사를 주기적으로 제공하는 등 충분한 영양 공급이 가능하도록 식단을 개선했다. 총리는 사비를 털어 건강에 좋은 고가의 포도당 수액을 여러 차례 가족들에게 제공했다. 관광객이 줄어들고 경기가 나빠지자 진도 주민들은 가족들에게 체육관을 비워달라고 요구했다. 가족들은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필자는 진도 경제 활성화방안을 보고했다. 정부 부처와 경제5단체의 그 해 추석 선물은 진도 농수축산물을 사용하기로 했다. 진도장터가 서울·과천·세종의 정부청사에서 개설되었다. 정부 관계자들의 하계휴가도 진도지역에서 보내도록 권장했다. 당시 정부의 노력이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이 부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와 함께 했던 총리실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면서 실종자 가족들을 위해 음으로 양으로 진심을 다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도 협의회를 구성했다. 정부 내에도 가족들과의 소통 채널이 있다. 진정성 있는 담당자들이 유가족과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합심해서 이 거대한 슬픔과 고통의 순간을 잘 이겨내야 한다. 이태원의 좁은 골목길을 생각하면 참담한 슬픔이 밀려온다. 가슴이 저린다. 두 손 모아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조재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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