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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위험한 지름길
2020-01-21 11:32:08 2020-01-21 11:52:34
올해 사회간접자본(SOC)예산이 늘어 건설사들이 토목에 집중할까 싶었지만 그런 분위기는 없다. 얘기를 들어보면, SOC 예산의 3분의 2가 기존 사업의 연장이란다. 그래서 새 먹거리가 안 된다는 것이다. 한 업자는 예전엔 민자사업의 수익성이 떨어질 때 보전해 주는 방안도 있었지만 요즘엔 그마저도 없어 기업 투자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경기부양을 위해 기껏 SOC 예산을 늘렸는데 크게 기대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2017년까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던 건설투자는 2018년 2분기부터 지속 감소세다. 그럼에도 정부는 토목 건설로 경기를 부양하던 과거 정권식은 피하겠다며 대안으로 내놓은 게 생활SOC다. 올해 SOC 예산 중 간선 교통망 확충, 도시재생 확대, 노후 기반시설 안전 강화 등 생활SOC에 많은 예산이 배정됐다. 그런데 아무래도 규모가 작다 보니 기업들의 참여의욕이 떨어진다. 지속가능 경제와 연결되는 산업인프라도 아니다. 철도나 항만이 부정적이면 산단이라도 지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소극적이다. 이왕에 돈쓰는 것 과감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명분을 지키려다 실리를 놓친다.
 
그 명분은 때론 아드레날린이 된다. 맹목적인 정책도 강행할 용기를 준다. 최근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이 불 지핀 부동산 거래허가제가 투기와의 전쟁에 몰입해 너무 나간 경우다. 거래허가제 논란이 커지자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검토한 적도, 검토할 생각도 없다’며 뒤늦게 수습하고 나섰다. 그럴 걸 왜 화두를 던졌는지 시장은 얼얼하다.
 
얼마 전 국회를 통과한 데이터3법은 산업, 경제적 측면에서 정치적 성과로 묘사됐지만 내실은 사회적 합의가 부족했다. 법안은 개인정보를 가명처리한 가명정보를 당사자들의 허락 없이 과학적 연구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준다. 그런데 정작 빅데이터 분석 기반 4차산업 목적으로 산업계가 요청해왔던 부분은 산업적 연구 활용이었다. 법안에 산업적 연구는 빠졌다. 인권단체 등 시민단체들이 개인정보의 ‘산업적 연구’ 활용을 반대해왔는데 절충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또 과학적 연구의 정의에는 민간 투자 연구가 포함돼 산업적 연구에 한 다리를 걸쳤다. 이 경계를 두고 추후 논쟁이 벌어질 듯하다. 결국 국회 통과 목적 때문에 구멍 있는 법안을 만든 셈이다. 산업계는 그나마 첫발을 뗀 것에 환영하지만 개인정보 주체는 납득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추후 시행령 등 하위법령을 만들 때 산업적 연구를 포함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요즘 그런 방식이 너무 흔해졌다. 재계 반대가 심했던 상법과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도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상장회사 사외이사 임기를 최대 6년으로 제한하고, 국민연금 등 공적연기금에 한해 5%룰 규제를 낮춰주는 내용이다. 사외이사에 대한 정관계 낙하산에다 국민연금 관치논란이 있는데도 법적 위임범위를 넘어 개정을 강행한 것에 재계 안팎의 우려가 있다. 이 사례도 재벌개혁 목적성이 절차보다 앞선 경우로 풀이된다.
 
사회적 합의가 정의다. 합의 없는 정의는 자칫 독선과 오판일 수 있다. 특히 중요한 사회적 쟁점을 처리할 때 지름길은 피해야 한다.
 
이재영 산업2부장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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