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무비게이션)‘어스’, 트럼프 깔아 뭉갠 조던 필의 통찰력
영화 속 수 많은 은유-직유-메타포…‘현재 미국 문제 지적’
분열된 다민족-다문화 국가, 극단적 보수주의 향한 ‘비판’
2019-03-25 00:00:00 2019-03-25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2017년 국내 개봉해 흥행과 화제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겟 아웃을 기억하는 영화 팬들이 많다. 포스터 속 흑인의 소름 끼치는 표정은 영화 전체 톤 앤 매너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미국 사회 흑백 인종 차별에 대한 직설적이면서도 영화적 시선의 소화력은 가히 압도적이란 찬사로서도 부족했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메시지를 강조하면 재미를 놓치고 재미를 강조하면 메시지가 희석된다. ‘겟 아웃은 이 두 마리 토끼를 완벽하게 휘어 잡으며 관객들 뒷덜미를 부여 잡고 끌고 갔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연출한 조던 필 감독 재능은 할리우드 장르 영화 개념을 단 번에 뒤집어 버렸다. 규모의 경제로 불린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서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저예산 영화 돌풍은 이 흑인 감독으로부터 시작과 끝을 이뤘다. 그리고 이 감독은 2년 만에 전작의 두 마리 토끼를 코끼리로 키워버렸다. 오는 27일 국내 개봉하는 어스는 코미디언이자 영화 감독이며 배우인 조던 필의 재능과 날카로움이 촘촘하게 뭉쳐진 또 하나의 충격이다. 이 흑인 감독은 전작 겟 아웃으로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인종 갈등에 칼 날을 들이 밀었다. ‘어스에선 미국 사회 전체로 시선을 확장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더욱 날을 세우고 있는 인종, 계층, 세대, 이민자, 미국과 멕시코 국경 문제 등이 총체적으로 융합됐다. 영화 한 편으로 이 모든 문제를 뒤섞어 하나의 맥락으로 끌고 간 조던 필의 연출력은 서슬 퍼런 트럼프 정부를 향한 일종의 선전포고문과도 같다.
 
 
 
영화 어스의 영문 제목은 ‘Us’. 직역하면 우리. 하지만 중의적인 의미로 ‘United States’ 미국을 가리킨다. 영화는 오프닝과 함께 핸즈 어크로스 아메리카’(Hands Across America) 캠페인을 소개한다. 1986년 미국 사회에서 진행된 실제 운동이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이다. 이 시기는 신자유주의가 미국 사회를 집어 삼키던 시절이다. 한 마디로 공공재의 민영화를 말한다. 물론 이 당시는 공교롭게도 정부의 극심한 부패화가 가속화된 시기이다. 신자유주의 역기능이다. 여기서부터 어스는 출발한다. 시스템 붕괴가 개인 정체성을 무너트리고 결과적으로 시스템 파멸을 가속화시킨단 정의가 내려진다.
 
어스는 한 흑인 가족을 대상으로 한다. 주인공 소녀 에들레이드는 가족과 함께 산타모니카 비치 놀이공원에 방문한다. 엄마와 아빠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때 묘한 이끌림에 부모와 떨어져 혼자 어딘가로 간다. 그를 맞이한 한 남자가 보인다. 성경 구절 예레미아 11 11이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무슨 말 일까. 그의 이끌림에 발길을 재촉한다. 놀이공원 한쪽 구석에 자리한 허름한 시설이다. ‘귀신의 집같은 분위기다. 어린 에들레이드는 홀로 그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안에서 충격적인 실체와 마주한다. 자신과 똑 같은 외모의 소녀와 마주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에들레이드 가족이 비춰진다. 소녀 시절 충격적 사건은 어떤 식으로 마무리가 됐을까. 궁금하다.
 
영화 '어스' 스틸. 사진/UPI코리아
 
우선 성인이 된 에들레이드 가족은 산타모니카 비치 인근 별장으로 휴가를 온다. 남편 게이브, 딸 조라, 아들 제이슨. 평범한 미국 중산층 가정이다. 이들은 과거 에들레이드가 방문했던 그 놀이공원을 다시 찾는다. 어린 시절 기억이 남았을까. 에들레이드는 불안하다. 그 불안은 현실이 된다. 제이슨이 갑자기 사라졌다. 하지만 우연한 사고였다. 그렇게 다시 별장으로 돌아온 가족이다. 물론 그 불안은 별장의 밤에서 현실이 된다. 에들레이드 가족과 똑 같은 외모의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는 가족이 이들 별장 마당에 버티고 서 있다.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닌 느낌이다. 이들의 공격에 에들레이드 가족은 붙잡힌다. 기괴한 가족의 리더로 보이는 레드는 유일하게 말을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대화 방식이 아니다. 공포스런 목소리로 이들 가족을 적대시한다. 레드는 리더로서 남편과 딸 아들에게 명령한다. 이제 사냥을 시작한다. 에들레이드 가족과 레드가족이 죽고 죽여야 하는 추격전을 벌인다. 하지만 에들레이드 가족뿐만이 아니다. 에들레이드 별장 인근에 살고 있는 조쉬 가족도 같은 일을 당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도플갱어일까. TV뉴스에선 레드 가족이 입고 있는 붉은색 작업 복을 입은 사람들이 출몰해 인간띠를 형성한 모습이 보도된다. 도대체 저들은 누구일까. 에들레이드 가족을 공격한 레드가족은 저들은 어떤 관계일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일까.
 
영화 '어스' 스틸. 사진/UPI코리아
 
어스는 평온했던 일상이 무너지면서 일종의 종말로 치닫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공포에 기반된 주된 정서와 슬래셔 무비에 가까운 잔혹함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장면도 상당히 많다. 하지만 의외로 이런 분위기에 위트와 코미디적인 요소를 가미시켰다. 미국 사회 현실 자체가 상류 계층인 백인을 제외한 유색 인종들에겐 공포와 잔혹함으로 다가오는 지금이다. 극단적 보수주의로 회귀하는 지금의 미국 사회에 대한 경고성 발언이다. 태생적으로 이민자를 받아 들이면서 다민족 다문화 사회로 발전한 미국의 사회 체계에 대한 의도적 반감은 어스가 흑인 가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에서도 들 수 있다. 단순하게 흑인 감독으로서 흑인 가족을 모델로 내세웠단 지적은 어스를 바라보는 넌센스다. 주류 계층에서 벗어난 흑인 가족이 느끼는 현실 공포 자체가 지금의 미국을 위태롭게 만드는 보수성에 대한 일침이다.
 
위트와 코미디적인 감각은 일침에 대응하는 미국 주류 사회에 대한 비웃음이다. ‘강력한 미국을 표방한 트럼프 정부의 독단적이고 일방통행 식 내치와 외치는 이미 국제 사회 조롱거리로 전락한 상태다. ‘어스를 연출한 조던 필은 미국의 대표적 풍자 코미디언이다. 그는 자신의 장기를 십분 발휘해 순혈주의를 표방하는 미국 트럼프 정부의 우매함을 꼬집는다. 영화 속 대표 이미지인 사육장에 갇힌 새하얀 토끼와 가위는 갇힌 백인주의에 대한 허약함과 단절의 은유다. 수 많은 토끼가 어떤 용도로 사육됐는지에 대한 영화 속 개연성이 이를 대변한다.
 
영화 '어스' 스틸. 사진/UPI코리아
 
영화 시작과 함께 등장한 아메리카 대륙 깊은 지하 곳곳에 자리한 버려진 엄청난 규모의 터널 존재. 그리고 핸즈 어크로스 아메리카운동은 완벽한 대척점에 선 스토리 동력 상징이다. 인종과 계층을 통합하자는 핸즈 어크로스 아메리카운동과 반대로 지상의 주류 사회 시스템과 반대되는 지하 곳곳 버려진 터널은 결정적으로 이 영화 어스메시지이자 거대한 메타포가 되는 셈이다.
 
영화 초반 에들레이드 가족을 습격한 레드는 그들에게 쏟아낸다. 레드는너희들이 지상에서 호의호식할 때 난 지하에서 고생했다. 에이브러햄과 결혼해 괴물 움브라에와 플루토를 낳았다며 애들레이드에게 수갑을 채운 뒤 살인 게임을 시작한다. 이미 미국 사회는 분열됐고 곳곳에서 살인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이미 트럼프 정부가 전 세계를 상대로 벌이는 독단적 행태다. 자국 내 분열조차 수수방관하고 있다. 이건 단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 '어스' 스틸. 사진/UPI코리아
 
어스’, 미국 내 언론이 들끓는 찬사를 쏟아낸 작품이다. 영화 한 편으로 담을 수 있는 메시지의 총합이다. 조던 필의 통찰력은 이미 트럼프를 깔아 뭉갰다. 개봉은 오는 27.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