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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발신제한’, 완벽한 ‘A+’ 상업영화 등장
폭탄 테러범 vs 한 남자 ‘심리대결’→테러범 주도 ‘원맨 게임’
‘성규’ 조우진, 감정 ‘희로애락’ 쥐락펴락 vs 테러범 ‘슬픈 눈’
2021-06-18 00:00:01 2021-06-18 00:00:0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폭탄 테러범이 특정인을 타깃으로 삼았다. 이럴 경우 전제 조건은 분명하다. 테러범은 특정인과 어떤 원한 관계로 묶여 있어야 한다. 그리고 테러가 진행되는 동안 불특정 다수가 큰 위험에 빠져야 한다. 특정인은 위험을 안고 있지만 그 위험에 동조하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 위험을 노리고 또 다른 무언가를 얻으려 하는 제3자가 테러범과 특정인 관계 밖에 존재해야 한다. 영화 발신제한은 이런 전제 조건을 충실히 따른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전제)조건이다. 테러범과 특정인 관계 속에서 물고 물리는 추격을 더하면 앞서 언급된 전제 조건은 그저 조건에 불과하게 된다. ‘발신제한은 못돼 보일 정도로 영민하고 잔인할 정도로 군살을 제거했다. ‘테러범이 한 남자를 노린다그 남자가 위험하다에만 집중한다. 그럼 관객들은 순수하게 테러범테러범이 타깃으로 설정한 그 남자에게만 집중하게 된다. 관객들은 결과적으로 두 사람 관계 속에 완벽하게 이입되고 동화된다. 자동차 안에 갇힌 이 남자의 절박하게 참담한 감정은 오롯이 관객들의 감정이 된다. 그리고 달린다. 이 남자가 운전하고 이 남자를 태운 자동차는 쉴새 없이 달린다. 숨이 차오를 때쯤 영화는 쉼터를 제공한다. 테러범의 이유를 슬쩍 흘린다. 그가 타깃으로 설정한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살짝 공개한다. 관객들이 뭔가 눈치를 챌 타이밍이 오면 다시 자동차는 달린다. 관객들을 완벽하게 끝까지 끌고 간다. 끌고 가는 방법을 알고 있다. 다소 거칠고 꽤 무자비하다. 멱살을 잡아 챈 상태에서 내(당신) 속도를 무시한 채 달린다. 하지만 그게 발신제한의 히든카드다. 관객들의 판단 여부를 봉쇄하는 장치다. 이 영화는 오롯이 테러범 지시와 생각으로만 달려야 한다. 관객은 물론 테러범 타깃이 된 그 남자의 판단이 들어갈 여지가 생겨선 안 된다.
 
 
 
성규(조우진)는 부산의 한 은행 투자담당 센터 책임자다. 열심히 일하고 능력을 인정 받아 올라간 자리. 어느 날과 별다를 바 없던 아침이다. 아내 대신 딸과 아들 등교 길을 책임진다. 출근하는 길목 아들과 딸을 각각 내려주고 중요 미팅을 가야 한다. 천신만고 끝에 잡아낸 미팅 자리다. 그때다. 차 안에서 휴대 전화 수신음이 울린다. 성규의 휴대폰이 아니다. 딸과 아들의 휴대폰도 아니다. 차 안에서 나온 정체 불명의 휴대폰. 화면에는 발신제한표시가 뜬다. 정체 불명의 한 남자는 차에 폭탄이 설치됐다고 협박한다. 누군가 내려도 터진다. 경찰에 알려도 터진다. 자신의 지시를 어겨도 터진다.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해도 터진다. 테러범은 강하게 말한다. 당연히 믿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 협박은 사실임을 알게 된다. 그가 가는 길목에서 연쇄적으로 폭탄 테러가 발생한다. 이제 그가 탄 차는 그 자체로 폭탄이다. 테러범은 돈을 요구한다. 금액은 44 1600만원. 구체적인 액수다.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짚이는 것이 없다. 설상 가상이다. 테러범 협박 도중 발생한 폭탄 테러로 뒷자리 막내 아들이 심한 부상을 입었다. 아들만이라도 병원에 보내 달라 사정해 본다. 하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테러범이다. 돈이 먼저란다. 고통에 신음하는 아들 목소리에도 단호하다. ‘나와 상관없다라고 선을 긋는다. 도대체 모르겠다. 왜 자신이 협박의 타깃이 됐는지. 그리고 이 사람이 왜 자신에게 이러는지. 44 1600만원을 요구하는 이유도 모르겠다. 1000원짜리 한 장이라도 덜하지도 더하지도 말란다. 성규는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 차 안에서 벗어나야 한다.
 
영화 '발신제한' 스틸. 사진/CJ ENM
 
발신제한은 완벽한 롤러코스터다. 관객들에게 감정 이입과 스토리 공감을 이해시키는 구석이 없다. 거의 반 강제적이다. 관객들 멱살을 휘어 잡고 달린다. 함께 달리는 게 아니다. 끔찍한 표현이지만 달리는 자동차에 관객 멱살을 줄로 연결한 채 시속 100km로 달린다. 멱살이 잡힌 채 끌려가는 관객들은 죽음의 공포감을 느끼며 죽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만 한다. 너무도 폭력적인 방식이다. 그런데 이게 발신제한플롯에선 정답이다. 오프닝 이후 불과 5분 내외부터 시작된 테러범과 성규의 두뇌 싸움은 치밀한 관계 설정이 필요 없다. 이건 순전히 한쪽으로 완벽하게 기울어진 싸움이 돼야 한다. 그래서 연출을 맡은 김창주 감독은 속도감에 집중한 듯싶다. 관객이 판단하고 주인공 성규가 판단할 시간을 최소화 시켰다. ‘발신제한은 순수하게 테러범이 처음부터 끝까지 판을 짜고 뒤 흔들어야 하는 게임이다. 성규와 그의 딸과 아들 그리고 아내와 다른 기타 인물들은 장기판 위의 일 뿐이다.
 
영화 '발신제한' 스틸. 사진/CJ ENM
 
테러범이 원하는 대로 게임이 흘러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인물들 동선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성규와 그의 딸과 아들은 차에서 내릴 수 없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오로지 차 운전석에 앉아 모든 것을 표현하고 연기하고 발산한 배우 조우진의 존재감은 한때 머리카락까지 연기한다는 연기력 찬사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다. 조우진은 얼굴 표정과 두 팔 그리고 두 손만으로 감정의 희로애락을 모조리 발산한다. 잘하는 게 아니라 공감이 되고, 공감을 넘어서 절박함이 느껴지며, 절박함을 넘어서 간절함이 다가온다. 테러범과의 두뇌게임에서 조우진이 연기한 성규는 만들어 낸 인물이 아닌 실제 존재하는 한 가정의 아빠이자 남편이 됐다.
 
영화 '발신제한' 스틸. 사진/CJ ENM
 
테러범과 성규의 두뇌싸움 그리고 테러범이 오롯이 조종하는 완벽한 게임 속에서 발신제한은 유의미한 주제와 이슈도 담아낸다. 드러내지 않은 표현 방식이 오히려 무게감을 더하는 기묘한 경험을 선사한다. 타인을 배제한 자기 중심적 사고가 중시되는 지금 시대의 두 얼굴. 이 영화가 주고자 하는 방식과 의미는 꽤 아픈 지점까지 건든다. 테러범을 연기한 배우의 슬픈 눈이 그래서 아프게 다가온다.
 
발신제한은 국내 상업 영화가 품을 수 있는 도심 카체이싱의 다른 영역을 열었다고 평가해도 부족할 정도다. 하지만 발신제한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나면 카체이싱역시 조건에 불과했단 사실을 느끼게 된다. ‘발신제한의 진짜는 관객 이입을 부탁하는 게 아니다. 폭력에 가까운 강요이지만 이게 전혀 폭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단 기이한 체험이다.
 
영화 '발신제한' 스틸. 사진/CJ ENM
 
연출을 맡은 김창주 감독은 충무로 최고의 편집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다. 영화를 컷과 컷이 연결한 동적 미학의 집합이라고 표현한다면 발신제한은 완벽하게 ‘A+’. 개봉은 오는 23.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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