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01.22 (일요일)

논문 쓰는 대통령지난해 말 영국의 온라인 학술활동 분석기관인 알트메트릭(Altmetric)에서 '2016년 100대 인기 과학 논문'을 발표했다.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발표된 과학 논문 가운데 언론과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논문을 점수별로 순위를 매긴 것이다. 1위는 전미의학협회저널(JAMA)에 발표된 '미국의 보건의료 개혁:진척 현황과 다음 단계'라는 제목의 논문이 차지했다. 이 논문은 무려 8063점으로 중력파 검출(4660점), 거대 제9행성 존재 가설(4,319점) 등과 같은 쟁쟁한 논문을 큰 점수 차이로 누르고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 논문의 저자는? 얼마 전 퇴임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었다.  지난 5일 '하버드 로 리뷰(Havard Law Review)'에는 '사법 정의의 진보적인 개혁에 있어서 대통령의 철학'이라는 논문이 실렸다. 또 6일 뉴잉글랜드의학저널(NEJM)에는 '오바마 케어의 폐기가 미국 보건의료에 미치는 위험'이라는 논문이 발표됐다. 이어 9일 세계적 과학저널 사이언스에는 '거스를 수 없는 청정에너지의 추세'라는 제목의 논문이 게재됐다. 특히 이 논문은 지나친 환경 규제가 경제 발전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을 일축하는 데이터가 제시됐다. 논문에 따르면 2008~2015년 미국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으로 산업 분야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9.5% 감소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미국 경제는 1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 세 편의 논문을 쓴 주인공은? 역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었다.  이런 논문이 얼마나 학술 가치가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퇴임을 앞두고 있긴 하지만, 현직 대통령이기 때문에 논문 게재의 문턱이 상대적으로 낮았을 수도 있다. 우리의 풍토라면 대필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논문의 학술 가치가 낮고, 학술지가 문턱을 낮췄고, 대필이 의심된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대통령의 퇴임 준비물이 사저나 재단이 아니라 논문이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단순한 글쓰기를 넘어 논문, 특히 과학 논문까지 발표하는 대통령이라니. 단순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자꾸 비교하게 된다. 글만이 아니다. 지난 10일 미국 시카고의 대형 컨벤션센터에는 2만여 명의 청중이 모였다. 연설을 제대로 잇지 못할 정도로 자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고별연설 자리였다. 그의 연설은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전 세계로 퍼졌다. 그리고 화합과 통합, 민주주의와 헌법 정신을 강조한 그의 연설은 국적이나 인종과 관계없이 깊은 울림을 전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미국인의 도전 정신으로 고별연설의 대미를 장식했다.       "우리의 제헌 헌법에 쓰인 그 신념을 지키라는 부탁을 드립니다. 노예들과 노예제 폐지론자들이 속삭였던 그 생각, 이민자들과 정착민들, 정의를 위해 행진했던 사람들이 노래 불렀던 그 정신, 외국의 전장에서 달의 표면에까지 깃발을 심은 이들이 재확인했던 그 신조, 그들의 이야기가 아직 쓰이지 않은 모든 미국인의 가슴 깊은 곳에 있는 신념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고, 해냈고, 또 할 수 있습니다(Yes we can. Yes we did. Yes we can)". 우리 사회가 감동적인 말과 글에 굶주렸기 때문일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배우 메릴 스트립의 수상 소감에도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다. 5분 30초 동안 진행된 연설에서 메릴 스트립은 트럼프 신임 대통령의 차별과 편견, 독설을 그야말로 '독하게' 비판했다. 그는 지난해 최악의 연기는 트럼프가 장애인 기자를 흉내내던 순간이라고 지적하면서 "그 연기는 제 가슴을 무너지게 했고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화가 아니라 실제였으니까"라고 울먹였다. 메릴 스트립은 또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약자를 괴롭히는 데 자신의 지위를 이용한다면 우리는 모두 패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료 배우인 로버트 드 니로가 메릴 스트립에 보낸 지지 편지도 화제가 됐다. "당신의 연설은 멋있었다. 그것은 말할 필요가 있었고, 당신은 아름답게 말했다. 나는 당신의 감정을 공유한다. 계속 이대로 둘 수는 없다". 메릴 스트립이나 로버트 드 니로가 한국 배우였다면 당장 '블랙리스트'에 올랐을 것이다.  지도자의 빈약한 말과 글에 이미 많은 국민이 실망했다.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도 최근 말의 '빈곤함'을 드러내며 공분을 사기도 했다. 말과 글은 곧 그 사람의 생각과 철학이다. 말이 신뢰를 받지 못하니 행동도 약점만 보인다. 우리가 바라는 지도자는 과학 논문까지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상식을 바탕으로 한 정상적인 말과 글로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기만 바랄 뿐이다. 이런 소망이 무리한 욕심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김형석 <과학 칼럼니스트·SCOOP 대표>


그런데 우병우는?희대의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파죽지세로 수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지난달 21일 공식적인 수사를 시작한 지 28일만에 ‘천하의’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대통령의 복심’인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피의자로 소환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기각되기는 했지만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에 대해서는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며, 최종 목표인 박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를 보름 정도 남겨두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시계도 쉴 틈 없이 돌아가고 있다. 공판준비기일 3번 만에 쟁점을 정리하고 6차 변론기일까지 끝냈다. 이 와중에 ‘국정농단’의 한 축인 최순실씨가 탄핵심판 증인으로 출석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도 증인으로 출석해 신문을 받았다. 윤전추·이영선 청와대 행정관도 탄핵심판 심판정에서 증인 진술했다. 오는 19일(7차 변론)과 23일(8차 변론)에 이어 25일 9차 변론기일까지 마치면 공개변론은 마무리 되고 곧바로 재판관 9명 전원이 참여하는 합의가 시작된다. 특검팀은 1차 수사기한인 다음달 28일까지 모든 수사를 마무리한다는 목표로 전력질주 하고 있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여부도 이런 속도라면 ‘2말3초’라는 예상을 깨고 2월 중순쯤 결정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검팀과 헌재 재판관들은 설 연휴 기간 중에도 출근해 증거물 분석과 자료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법원도 뒤지지 않는다. 앞서 검찰이 기소한 최씨와 안 전 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 김종 전 문체부2차관,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에 대한 형사재판도 만만치 않은 속도를 내고 있다. 이들의 재판을 맡고 있는 재판부는 야간재판도 마다하지 않고 재판을 진행 중이다. 검찰로 눈을 돌려보자. 고검장인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수장을 맡은 특별수사본부는 최씨 등 국정농단 핵심 사범을 줄줄이 구속 기소하고, 박 대통령을 사실상 국정농단의 주범으로 지목하면서 실로 오랜만에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박영수 특검팀에게 그동안의 수사 자료를 모두 넘겨준 뒤에도 최씨 등 국정농단 사범들의 공소유지에 최선을 다 하고 있는 모습이다. ‘국정농단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준 사법부라는 검찰을 포함해 우리나라 사법부 전체가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뭔가 허전하다. 방대하면서도 복잡하게 설치된 도미노가 빠른 속도로 넘어가는 것 같지만 중간 패가 빠져 곧 막힐 것 같은 불안감마저 든다. 그 중간 패,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때문이다. 우 전 수석, 2015년 2월 취임했을 때부터 2016년 10월 퇴임할 때까지 그가 남긴 의혹은 손가락으로 꼽을수 없을 정도다. 검찰은 언제부터인가 ‘우병우 사단’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뒤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 전 수석의 비리를 수사하겠다며 호기롭게 특별수사팀 지휘를 맡은 윤갑근 대구고검장은 126일이나 사건을 만지작 거리다가 수사를 끝냈다. 스스로도 “민망하다”고 말 한 윤 고검장은 “역시 우병우 사단”이라는 오명을 스스로 각인시켰다. 우 전 수석에 대한 의혹은 크게 개인비리와 국정농단 배후로 대별된다. 이 중 개인비리는 검찰이 가지고 있다. 넥슨과의 강남땅 특혜 거래 등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김석우)가 맡고 있다. 변호사시절 ‘몰래변론’ 등 변호사법 위반과 조세포탈, 국정감사 불출석 고발사건은 특수1부(부장 이원석)에 재배당됐다. 그러나 검찰은 우 전 수석에 대해 이렇다 할 수사를 하지 않고 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우 전 수석이 특검의 수사대상이기 때문에 섣불리 조사하다가는 자칫 특검 수사를 방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검은 어떤가. 검찰 인사 전횡과 국정농단 측면에서 보면 우 전 수석은 김 전 비서실장보다 오히려 더 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특검 역시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만큼은 이렇다 할 진척이 보이지 않는다. 우 전 수석은 국정농단 사건의 초기 단계인 ‘최순실 게이트’ 때부터 박 대통령을 비호하기 위한 전체적인 판을 짰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박 대통령과 국정농단의 한 축인 최순실과의 관계도 심상치 않다는 의혹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왔다. ‘현상수배’가 붙은 뒤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 나왔을 때 그는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여전히 존경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했고 검찰 조사 때 찍힌 팔짱 낀 모습의 사진에 대해서는 “추워서 그랬다”며 국조특위를 희롱했다. 더 이상 검찰과 특검의 ‘서로 눈치보기’는 매우 위험하다. '특검의 본질은 검찰 수사의 검증'이라는 법리는 허울 좋은 궤변이다. 검찰과 특검이 머뭇거리는 사이 국정농단의 진실은 우 전 수석과 함께 지금도 묻혀가고 있다.    최기철 사회부장